'2003년 대구는 미래가 사라진 중병을 앓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 소장학자인 홍원식(계명대 철학과), 홍덕률(대구대 사회학과) 교수가 과거의 환상속에 빠져 발전과 변화를 거부하는 '대구 사람'들에 대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모두 담은 대구병을 앓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들은 31일 오후 계명대에서 예술마당 솔 주최로 열린 '대구를 기획한다'란 심포지엄에서 '대구 무엇이 문제인가', '지하철 참사를 통해 본 대구와 대구사람'이란 발표를 통해 '대구병'의 원인과 치유책을 밝히며 이같이 주장했다.
홍원식 교수는 '대구병'의 대표적 증상으로 개성과 색깔, 향기가 없는 다양성의 부족을 들었다.
그는 "다양성의 부족은 상호간 차이와 대화를 거부한 채 닫힌 구조를 띠게 되고 배타와 고립을 불러오게 된다"며 지금 대구는 섬처럼 남아 있다고 밝혔다.
특히 홍 교수는 '대구병'의 심각성은 스스로 문을 닫고 있으면서 자신이 갖혀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수로 대변되는 대구가 그것이 바람직하고 제대로 된 보수인지, 혹은 수구인지,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보수'를 강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구병'의 발병시기를 3공화국으로 진단했다.
홍 교수는 "3공화국은 근대화가 본격화되던 시기지만 대구는 집권의식과 소중앙주의에 빠져 근대화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는 5·6공화국을 거치면서 중증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도 자신의 '병'에 대한 진단과 치유를 거부해 '대구의 생각'은 그때 성장을 멈춰 버렸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대구가 근대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유교적 봉건 잔재의 영향을 들수 있다"며 "문제는 대구가 퇴계의 긍정적 측면은 이어받지 못한 채 껍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홍덕률 교수는 "'대구'의 문제는 단지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며 한국적 보편성을 갖는다"며 "그러나 대구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가장 중층적으로 집적된 도시"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구 정치권이 '대구병'의 발원지이며 퇴행성 질환인 동맥경화증과 동종교배, 그리고 수구병을 앓고 있다고 꼽았다.
홍 교수는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운 순환기 장애로 고통받는 대구병의 가장 심각한 부위는 정치권"이라며 "대구의 정치권은 일당 독재에 머물러 혈액순환도 신진대사도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정당간 경쟁의 부재로 정당 내의 혁신도 없고 부패와 정체와 노화의 온상이 되어 버린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과 그들을 견제할 지방 의회 의원들도 온통 한나라당 소속인 '동종 교배의 후진적 정치구조'를 가진 탓에 견제와 균형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또 '동종교배의 열등화 법칙'은 지역 대학,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대구의 리더들은 이념과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로 왕따당하지 않기 위해 눈치보며 사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며 "온통 한 색깔뿐이고 상상력과 다양성이 말라버린 도시면서도 감히 세계적인 '패션 도시'를 추구한다는 것이 무모해 보이기조차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구는 권위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돌진주의, 안보지상주의 등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수구병'을 앓고 있으며 전통적 혈연주의에 기초한 고질적 '연고주의 병'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연고주의의 폐해는 토론은 없고 집단 내의 끈끈한 정과 소인배식 의리만 판친다는 것"이라며 "주요 결정은 늦은 시간 술집에서 만나는 끼리끼리 집단에서 이루어지며 공적 의사결정은 굴절되거나 형해화된다"고 주장했다.
대구의 '어른'이 없다는 것도 연고주의 탓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연고주의 집단 내에는 수장이 있지만 연고주의는 특성상 적대 집단을 만들어 내게 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들은 "이 자리가 대구를 자학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라"며 "지금이라도 중병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 분야의 혁신과 토론, 개혁이 받아들여지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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