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
42세의 아버지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30대 한창 때의 고난과 고뇌. 그리고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죽었다.
두 아이는 얼굴을 잃었다.
차마 남에게 풀어내 놓기엔 너무도 처절한 사건. 게다가 얼굴마저 잃은 그 철없는 아이들을 원망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5년. 마음을 다잡고 보니 아버지 가슴에는 말이 말라 버리고 없었다.
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오직 통한들. "마치 내가 일을 저질러 애들이 이렇게 된 것 같은 죄책감에 괴로웠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절망하고 속이 상해 하던 일도 죄스럽습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아이들이 수술을 받아 마스크를 안쓰고도 자신감에 차 나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예민할 나이에 그 처절한 일들을 겪고도 아들 민수(17.가명.고1)와 딸 정희(14.가명.초교6) 남매의 얼굴은 밝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친구들 하고는 잘 지내니?"
민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중1 때 지각했다가 함께 복도 청소를 하면서 알게됐다는 친구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고 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냐?"
얼굴이 더 밝아지더니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 반에서 2등해요". 컴퓨터 게임과 농구를 좋아하고 물냉면이 제일 맛있다고도 했다.
정희의 눈도 초롱초롱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구김살 없이 천진했다.
친구도 더 많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 얼굴을 보여준 뒤 곧 다시 마스크를 끼고도 밝은 표정을 흐트리지 않았다.
엄마 없이 사느라 아빠.오빠를 위해 밥도 곧잘 짓고 설거지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매는 모두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5년 전의 그 엄청난 사건이 새긴 상흔들. 사춘기에 접어들어 외모에 민감해진 아이들은 차마 친구나 이웃에게 맨얼굴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업 중에도 항상 마스크를 쓴다고 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마스크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은 음식 먹을 때와 학교 갔다가 13평짜리 집으로 돌아 왔을 때뿐.
민수는 학교 점심시간이 가장 힘겹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마스크를 벗기가 두려워 혼자 먼 길을 달려 집까지 와 점심을 먹고 다시 가곤 했습니다.
지금은 체육실에서 혼자 밥을 먹습니다.
그러나 점심 시간이 아닐 때는 물도 빨대로 마셔야 하고…" 혼자서 많이도 울었다고 했다.
정희는 "여름엔 더위로 힘들고 마스크 안에 땀이 많이 차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처럼 놀이공원이나 운동장 같이 사람 많은 곳에서 마음껏 맨 얼굴로 뛰어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남매를 수술 받게 해야 할 아버지는 지금 트럭을 몰고 대구 시내를 도는 과일 행상을 나가 있는 중이다.
국가의 기초생활 지원 대상. 행상으로는 아이들 학비와 아파트 관리비, 생활비 맞추기도 빠듯할 뿐이다.
053)962-3831(대구 안심제1복지관).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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