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사투리 열풍

입력 2003-05-14 09:31:58

연극배우로 처음 입문할 때다.

경상도사투리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으'와 '어' 발음이 문제였다.

볼펜을 입에 물고 소리 내었고, 서울친구의 입모양까지 흉내냈지만 쉽지 않았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정상적인 교육, 합리적인 사고방식, 세련된 도시미의 소유자로 느꼈을 정도다.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사투리의 등급(?)이 급상승하고 있다.

단순한 아웃사이더.비주류의 제도권 진입이나 파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의 주요 아이콘이 되어 대중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가수 강산에의 '와 그라노'는 경상도 사투리가 노랫말이고, 영화 '친구'나 '가문의 영광'이 대박이 된 데는 사투리가 결정적이었다.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에서 배두나는 경상도사투리로 인기몰이를 했고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장나라가 주목받은 데는 충청도사투리가 크게 기여했다.

지역출신 김재동이 전국적인 MC.개그맨으로 활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중문화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심리적 욕구에 자극을 주어 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것. 욕구의 자극적요소로서 '정서의 유발'만한 것도 드물다.

각박하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층적인 상실감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감정과 정서를 일깨워주는 탓이다.

고난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강렬하고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해서다.

사투리가 대중문화에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라져버린 고향과 메말라버린 감정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와 감성을 충족시켜 모성애 또는 애국심과 충성심 등의 승화된 가치체계를 신념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경멸하려든다.

'촌놈들' 운운하며 자조한다.

사투리와 촌스러움을 같은 등식으로 매긴다.

세련됨은 익숙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촌스러움은 자주 접하지 못한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처럼 '천한 것들~'을 남발하고 있다.

자신은 아니라고 우기며….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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