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양돈업계 감축만이 살 길

입력 2003-05-09 09:54:38

돼지콜레라의 충격은 가시고 있지만 양돈농가는 여전히 어렵다.

사육두수가 사상최고치에 이르러 과잉 공급이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출혈경영이 10개월째 계속되면서 일부는 이미 도산하고 그나마 근근이 버티는 농가들도 생불여사(生不如死)다.

돼지콜레라 여파로 수출이 중단된 마당에 가격폭락세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사육두수 감축에 있다는 것이 농가와 당국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양자의 이해관계와 방법이 상충돼 전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답답한 실정이다.

▨ 사육두수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돼지 사육두수는 지난 4월 현재 900만마리. 적정두수 800만마리를 훨씬 초과한 것이다.

사육두수 증가추세는 돼지고기 일본수출이 본격화된 97년부터 시작된다.

수출량은 97년 4만t, 98년 7만t, 99년 8만t으로 사육두수도 같은 시기 650만마리에서 750만마리, 780만마리로 증가했다.

수출로 가격이 높게 형성된 영향이었다.

2000년 국내에 구제역이 발생한 후 수출이 중단됐지만 사육두수는 계속 증가했다.

반짝경기에 힘입어 내수가 확대돼 여전히 시세가 좋았고 수출 재개 기대로 양돈농가에서 두수를 계속 늘여 2000년 820만마리, 2002년에는 900만마리를 넘었다.

▨가격폭락

2001년 상반기까지는 가격이 좋았다.

그러나 그해 7월 규격돈(100kg) 1마리당 22만원을 기록한 것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전환, 지난해 하반기부터 15만원대로 떨어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경기침체와 잇단 구제역, 돼지콜레라 파동에 따라 소비가 급감한 때문이다.

그간 중단된 수출물량 일부와 가격불안 요소를 소화했던 내수시장이 얼어 붙어 수요와 공급 균형이 무너지고 가격파동이 발생한 것이다

▨사육두수 축소 필요성

국내 사육적정두수 800만마리는 수출이 정상적으로 이뤄졌을 때를 계산한 것이다.

필리핀과 러시아 등지로의 소량 수출은 계속되지만 수익을 재대로 낼 수 있는 일본수출이 재개되려면 최소한 1년 이상, 아니 2, 3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돼지콜레라 청정국 자격을 얻어야 하고 그러자면 예방백신 접종 중단후 1년이 경과해야 되는데 우리는 올 봄 돼지콜레라 발생때 접종을 재개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수년간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수출품목이던 등심과 다리살이 악성재고가 되고 있다.

육가공 공장에서도 비축할 창고가 없어 더이상 받지 못할 실정이다.

이들 품목은 국내에서 비선호 부위지만 국내시세보다 높은 값에 팔려 전체 돼지가격을 높이는데 효자 노릇을 했으나 이제는 역으로 내수가격 하락을 주도하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수출이 막히고 내수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사육두수를 줄이는 것이 가격회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 되고있다.

▨사육두수 왜 못 줄이나

양돈농가들은 지금 사육두수를 줄이면 당장 출혈경영은 피할 수 있지만 정작 가격이 회복됐을 때 출하할 물량이 부족해 덕볼 것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다.

또 일정한 사육규모를 허물게 되면 축사시설이 폐허가 되고 회전자금도 달려 다시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려워도 사육두수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일면에는 이기심도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양돈농가들은 자신은 그대로 두면서 남들이 줄여 가격이 회복될 때 반사이익을 보려 한다.

안동시 양돈협회 김건년 회장은 "과거에 정부주도로 사육두수 감축을 시행했을 때 이런 전례가 있어 농가들 사이에는 나만 손해볼 수 없고 시책을 따르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고 말했다.

당국도 권장은 할 수 있으나 강제하지 못하고 장려금을 주고 감축을 유도할 수 있지만 비용부담이 너무 큰데다 농가의 비협조로 상응하는 효과도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농가 자율감축이 최선이다.

양돈농가 김재경(56.안동시 와룡면 서현리)씨는 "1천마리 이상 사육하는 대규모 전업농가들이 앞장서 현재 사육두수의 10%를 줄이면 희망이 있다" 고 주장했다.

양돈협회 등 민간 생산자단체들이 주도해 농가 합의하에 마리수를 정하고 예외없이 실천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룰이 지켜질 경우 정부의 감축보조금도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것.

농림부 축산국 조정래 사무관은 "시행하기가 켤코 쉽지 않지만 농가들의 정확한 상황인식과 실천의지가 전제되고 정부나 자치단체가 뒷받침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고 말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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