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3-05-08 09:40:17

몇 개의 산맥을 타넘어야

네게 이를 수 있니

불개미 한 마리가

플라스틱 장미 꽃잎을

한잎 한잎 타넘어가고 있다

어떻게 등불을 빨아먹을 수 있니

나방이 한 마리

혓바닥을 바늘처럼 곤두세우고

한밤내 가로등을 찔러보고 있다

김혜순 '서울의 밤' 중

개미가 플라스틱 장미꽃을 넘어가고 나방이 덧없이 가로등을 찔러봐도 살아 있는 서울의 몸을 찾을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우화를 설정해 인공 시설물로 된 서울의 죽은 밤을 꼬집고 있다.

시니시즘의 허무가 깔려 있지만 시적 표현은 익살로 되어 있다.

젊은 시인들이 지닌 역설적 톤의 한 풍경이다.

권기호 (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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