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새벽스님 원효

입력 2003-05-01 09:40:22

"누가 내게 자루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찍어버리겠노라".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타파하고 평등과 화해의 새로운 세상을 펼치려는 원효의 깨달음에 대한 외침이다.

지금까지의 구속과 억압을 벗어나 걸림없는 대자유를 누리는 삶을 실천해 보이려는 원효의 외침이었다.

요석공주와의 인연을 맺은 후 파계한 승려라 소성거사로 자처하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면서 지식의 유무, 신분의 귀천, 재산의 과다에 구애됨이 없이 평등과 자유를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을 보여주었다.

무지랭이 백성들도 당시 최고의 지식과 첨단의 가르침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걸림이 없는 노래인 무애가를 부르며, 또 무애박을 희롱하며 무애희를 추는 원효의 모습이 지금 절실하다.

경산시 삼성산 부근 밤실에서 태어난 원효는 이름 그대로 민족의 첫새벽을 열어간 위대한 지성이며 우리 민족 자주의 큰 새벽을 연 밝은 별이었다.

도반인 의상과 함께 중국유학을 가기 위해 지금의 충남 당진부근에 이르렀을 때 어둠이 깔리고 비바람을 만나 한 땅막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그곳은 땅막이 아닌 옛 무덤 속임을 알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원효는 동티를 만나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는 그에게 큰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다.

지난 밤 잠자리는 땅막이라 여겨 편안했는데 오늘밤 잠자리는 무덤임을 알고는 편안치가 못함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이다.

음력 삼월 그믐날인 4월 30일은 원효가 입적한 날이다.

계율에 얽매인 자신을 죽이고 귀족들만의 부처를 죽인 원효의 무애행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삶이 참된 대동의 삶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보수와 진보, 개혁과 수구, 출신 지역과 학교,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 등의 속박을 벗어난 진정한 화해와 화합이 필요한 이때 원효의 일깨움과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다.

경산대학교 교수.국어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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