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하나마나 청문회'이면…

입력 2003-04-21 11:49:30

기왕 청문회를 만들었으면 좀 그럴듯하게 하라. 앞서 경찰.국세청장, 검찰총장 청문회도 이 잡듯 할 것처럼 난리를 치더니 막상 멍석 깔아놓으니 풍선에 바람빠지듯 대충 넘겨버렸다.

내일은 '빅4'의 마지막 주자 고영구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다.

국회가 국정원장을 청문회의 도마위에 올렸을 땐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42년 정보기관 역사상 처음으로 재야(在野) 인권변호사인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발탁했을 땐 전문적인 식견보다는 그를 통해 국정원을 탈(脫)정치화, 개혁시켜 보겠다는 굳센 의지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새 국정원장이 노 대통령이 주문한 바, 탈권력화.탈정치화에 대한 확실한 수행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이후 누차 "국정원으로부터 누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다는 식의 정치게임에 관한 보고는 일절 받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국정원의 그 여력을 동북아시대 비전을 연구하는 등 창조적 일에 쓰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국정원이란 권력기관이 정치에 개입하고 부패에 연루되고 심지어는 경제.언론 등 각 분야에까지 '압력의 손'으로 작용해 왔음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목소리다.

그가 검찰과 연결된 청와대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기무사의 보고까지 사절했을 땐 국정원은 대통령의 뜻을 '곧이 곧대로' 읽어야 한다.

"혹시 대통령이 나중에, 답답할 땐 마음이 변할 줄 모르니…"하고 자의적으로 행간(行間)을 읽는다면 그 공직자는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불충(不忠)이요, 간신배일 터이다.

국정원은 노무현 대통령 때가 아니면 아마도 영원히 고치기 힘든 기관이다.

그도 실패할지 모른다.

그래서 국회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독대보고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정부 각부처나 국회.정당.언론사.경제단체 등에의 출입제도 폐지를 지시하고, 국정원 직원들의 눈길을 '해외'로 돌리자고 독려했다.

국정원의 능력강화 방향을 대통령이 제대로 읽어낸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내일의 청문회에서, 노 대통령이 말로만 해놓은 '국정원 탈정치화' 지시를 고영구 내정자가 어떻게 지켜갈지 그 구체적 실천계획을 따져야 한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의 '립서비스'를 법제화.제도화로 뒷받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파트와 해외파트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식의 '국정원 보고'와 '국회의 양해'가 궁합이 맞게되면 국정원에 대한 '힘빼기 작업'은 또 물건너 간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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