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3-애견 천국

입력 2003-04-18 09:45:56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 위치한 애견카페 '피플 앤 도그'.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후 애견을 품에 안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카페로 들어왔다.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밥'. 밥은 만화영화에서나 봄 직한 커다란 '올드 잉글리시 시프 독'이다.

밥의 신장과 몸무게는 55cm, 35kg. 손님들에게 펄쩍 뛰어 안기는 모습이 자칫 함께 넘어질 것 같았다.

밥 뒤를 이어 콜리, 시베리언 허스키, 골든 리트리버 등 호랑이만한 큰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이들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시츄, 요크셔테리어와 같이 작은 개들도 그 뒤를 이었다.

이 카페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개만도 15종류에 35마리. 이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장난을 치면서 정을 나눴다.

이 카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애견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개들 역시 여러 종류의 개들과 접하면서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전보경(30·여·경산시 하양읍)씨는 이날도 애견 '미니핀'은 물론 가족, 친구까지 모두 5명이 카페에 들렀다.

이들은 식사 중에도 카페 안을 돌아다니는 개들과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개들의 손가락만한 길이의 털이 옷엔 물론 음료수잔, 음식에도 들어갈 법 하건만 아랑곳않고 식사를 했다.

전씨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며 "집에 늦게 들어갈 때도 제일 반겨주는 것이 애견이고 기분이 울적할 때 위로해주는 것도 애견"이라고 했다.

애견카페 사장 임미영(28·여)씨는 "지치고 힘들 때 혼자 이곳을 찾아 한참동안 개를 안고 있다 가는 사람들도 많다"며 "꼭 사람에게서 받지 못하는 정을 애견을 통해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애견 천국이 됐다.

백화점, 대형 할인점에 가도 어김없이 애견이 있다.

거리, 자동차안, 공원 등 애견이 없는 데가 없을 정도다.

대학 동아리, 협회 등에서 주최하는 애견 행사도 자리잡았다.

18일부턴 한국애견협회 등이 주최하는 '도그 페어' 행사가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개의 개념은 '집 지키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이젠 '애완견', '반려동물'로서 한 가족이 됐다.

'나홀로족'이 늘고 자녀의 정서적 독립이 빨라짐에 따라 가족 이상으로 애완견을 키우는 어른들도 늘고 있다.

또 자녀 수가 줄면서 '형제' 대신 애완견을 키우는 집도 많다.

한국애견협회에 따르면 애완견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12%인 160만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애견인구도 50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키우는 애견도 280만 마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약 5% 정도라고 한다.

애견 가격의 경우 보통 수컷은 30만~40만원, 암컷은 40만~50만원대. 하지만 한 배에서 나와도 인물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다가 최근에는 수입개도 늘고 있어 가격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2000년에는 6천182마리였던 개 수입이 2002년 11월 현재는 5만1천367마리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애견 산업이 날로 번창, 애견 관련 산업 총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

개껌, 과자는 기본이고 애견 소파, 향수, 눈물자국 제거제, 강아지포대기 등 없는게 없다.

애견 티셔츠, 원피스, 자켓 등 애견 옷을 사이즈에 맞게 제작해주는 곳도 있다.

6만~7만원 정도로 비싼 옷이라도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애견관련 가게에서도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애견 사랑'은 급기야 '애견 명품'까지 만들어냈다.

20만~30만원대 개집이나 침대, 소파는 기본. 주문제작되는 명품의 경우 평균 130만원이 넘는다.

모 인터넷 주문업체에는 고급 원목을 사용해 현역 작가들이 제작했다는 개집과 침대 등도 판매되고 있었다.

이 업체 김득영 대표는 "최근 가족 수가 적어지면서 경제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애견에게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며 "가족에게 좋은 방을 하나 마련해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견과 주인의 커풀룩 맞춤에다 애견을 위한 전문 쿠키와 케익 인터넷 쇼핑몰도 생겨났다.

가격도 사람들이 먹는 케익과 같은 수준. 수십 만원대의 애견용 종합영양제도 있다.

애완견 유치원, 애견전문 사진관도 생겼다.

애견 성장 단계에 따라 별도의 전용 사료까지 나왔다

이러한 과열된 '애견사랑'엔 법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년 과태료를 물어가면서도 애견장례를 치르는 업체도 있을 정도다.

애견 장의법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애견장례전문업체에서는 개주인의 주문에 따라 애견이 죽으면 장의차나 리무진까지 대동하고 화장 예식을 치러준다.

최고급 오동나무 관 30만원 등 장례비가 보통 55만~60만원 정도 들지만 이 업체를 찾는 애견인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친 애견사랑에 손을 내젓는 애견인들도 적잖다.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최혜연(24·여·남구 대명동)씨는 "사람이 명품, 명품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생기는데 개에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며 "개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명품 소비가 개에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애견 수가 증가함에 따라 부작용과 문제점도 불거지고 있다.

주부 박정숙(40)씨는 한 백화점에 들렀다가 황당한 경우를 목격했다.

박씨는 "애완견을 안고 쇼핑나온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제품 홍보를 위한 시식용 음식을 개에게 먹이고 있었다"며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수(31)씨도 올 초 창문이 다 내려가 있는 택시를 탔다고 했다.

이씨는 "추운 날씨에 왜 창문을 열어놨냐고 물었더니 바로 전 손님이 애완견을 안고 탔는데, 냄새가 얼마나 심하던지 창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것도 이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개가 너무 커 버렸거나 귀찮아져 학대하거나 버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동물학대방지연합 등의 인터넷 게시판엔 '초등학생이 개를 목욕시킨 후 털을 말린다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작동시켰다'는 얘기에서부터 '옆집 사람들이 개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마구 때린다'는 고발까지 다양했다.

대구 동인동 모 동물병원 옥상엔 치료 목적으로 맡겼다가 찾지 않아 버려진 애견들도 많다.

버려진 애견들이 이 병원에 맡겨지는 수도 한 달에 열 마리가 넘는다는 것. 이 병원 최동학 원장은 "질병을 앓거나 애견의 덩치가 커지면서 잘못된 전화번호를 남기고 안찾아가는 경우도 많고 애견 주인이 때려 골절상으로 병원에 오는 애견들도 적잖다"고 했다.

애견에 대한 과도한 집착 탓에 애견의 성격까지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오냐오냐'하며 키우다 보면 개가 '자기가 사람인줄 알고' 주인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잠시라도 가둬놓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 또 키울만한 여건이 안되는데도 애견을 고집해 빈집을 지키게 하는 경우도 많아 우울증세를 보이는 애견도 많다고 한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애견들은 온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온갖 물건을 물어뜯어 놓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

개를 좋아하다 못해 애견카페를 차렸다는 임미영씨는 "애견은 애견다워야 한다"며 올바른 애견사랑을 강조했다.

임씨는 "애견 한 마리가 가정에 들어오면 활기가 넘치고 강아지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대화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만 이에 앞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앞서야 한다"며 "진짜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들이갈 때 배설물 주머니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애견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최근 몇 년새 애견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중매체 영향이다.

지난해부터 방송사마다 앞다퉈 방송한 애완동물관련 프로그램이 '애완견 붐'을 일으켰다.

8년째 애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대구시 봉덕동 한일애견 정승은(32·여)사장은 "방송사마다 애견관련 프로그램이 경쟁적으로 방송되면서 실제 지난해 젊은 층의 애견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했다.

정 사장은 "경기침체 등으로 사람들은 갈수록 사는게 힘들어지고 있는데 개들은 오히려 점점 더 호화롭게 살고 있다"며 "아무리 개가 좋아도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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