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활동분야나 사상이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그는 평전을 쓰기 가장 힘든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4년 동안 매월당을 추적한 결과물인 '김시습 평전'(돌베개)에서 저자 심경호(沈慶昊.48)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를 짓고 글을 썼던 문인으로서, 유가성리학과 정통 유가사관의 주제를 저술로 남긴 참여 지향의 선동가로서, 불교의 철학적 사유를 유교의 이상과 연결시키려 했던 철학자로서, 몸과 생명을 중시하여 수련 도교를 실천한 혁신적 사상가로서,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로서, 국토산하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역사미를 발견했던 여행가로서"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복잡하게 보려고 해서 그렇지, 한편에서 보는 김시습은 일생이 대단히 단순하다.
심 교수는 말한다.
"김시습은 정치적 역학관계의 장 속에서 자기 위치를 조율한 적이 없이 방랑과 은둔을 반복하였을 따름이다"
매월당이 승려로 출가한 시기만 해도 종래 학계에서는 18세 무렵이라고 했으나, 심 교수가 막상 이것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 매월당 자신의 글을 보았더니 오류임이 드러났다.
자료로써 확인되는 확실한 '승려 김시습'은 24세 이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승려 자격증인 도첩을 받은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29세 때였다.
이처럼 전설과 신화와 씨름한 결과 심 교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김시습의 모습, 즉 '절의(絶義)의 화신'은 미화된 것임을 확인했다.
약 2천여수가 전해지는 그의 시에 대해서는 자기검열 없는 독백과 오열이 많으며, 산문은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는 열정이 짙게 묻어난다고 평가했다.
또 김시습이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만이 진리를 터득했노라 자부하면서 광기를 부린 적은 없다.
49세 때 탁발승의 모습으로 관동으로 향하면서도 수기(修己)와 궁리(窮理)를 아울러 고민하기도 했다.
심 교수는 매월당을 "고독한 자유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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