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따라 세월따라-신명나는 봄놀이

입력 2003-04-01 09:38:34

6,7년전쯤 TV에서 본 재미있는 장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한 여성들이 단체로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후, 인근 숲으로 몰려가 어깨춤을 덩실 덩실 추고 노래를 한껏 불러 제치는게 아닌가.

딱딱한 표정으로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만 되뇔 것 같은 북한 여성들의 이런 모습이 무척 신기해 보였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는 북한 아줌마들과 관광버스 안에서 쉴 새 없이 방방 뛰는 남한 아줌마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남과 북으로 갈려있지만 피는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미국에 유학하는 학생들의 놀이문화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도심에서 춤추고 노래 하다가는 경찰에 붙잡혀 가기 십상이다.

이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은 하루를 잡아 노래방 기계나 CD플레이어 같은 장비를 들고 몇백㎞를 달려 록키산맥 같은 깊은 산속을 찾아 나선다.

아무도 없는 심산유곡에서 맘껏 춤추고 노래하면서 유학생활의 스트레스를 푼다나. 역시 우리는 가무(歌舞)에 일가견이 있는 민족이 아니던가.

오죽하면 예로부터 봄은 여인들의 어깨짓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을까. 나물을 캐면서도 노래 한자락을 걸쭉하게 뽑아내고 어깨춤을 살짝 살짝 비틀었던 옛 여인네들의 흥취를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1960년대 대구 인근으로 봄나들이 나온 한무리 여인들을 찍은 사진이다.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 여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 속에서 어깨춤을 덩실 덩실 추고 있다.

북채를 잡은 여인, 월계관처럼 나뭇가지를 꺾어 머리에 쓴 여인, 나무 작대기를 흔드는 여인…. 이날 만큼은 가족 걱정, 살림살이 걱정은 훌훌 날려보내고, 춤추고 노는데 몸과 마음을 던지고 있다.

무아지경이다.

신명이 많은 민족이다.

앞으로 그 신명이 좀더 밝고 진취적인 쪽으로 승화됐으면….

글.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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