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참사 특별기고-이것만은 짚고 가자

입력 2003-03-13 12:08:17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소방 및 전기설비사업을 하고 있던 터라 우리나라의 지하공간 특히, 지하철의 방재 설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구지하철은 소방에 관한 한 법적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방화 때문에 수백명이 희생되는 대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각종 피난.소방장비는 무용지물이었고 중앙로역은 삽시간에 '아우슈비츠 학살장'으로 변했다.

소방법에 맞게 설치된 시설들이 왜 제 기능을 못했을까. 그것은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경제논리만 앞세운 채 안전설비에 비용을 제대로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대부분의 지하공간 소방설비는 법이 정하는 최소 요건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사고는 나기 마련이며 흔한 범죄인 방화는 예방할 수 없다.

결국 사고가 났을 때 초기에 진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길밖에 없다.

지하 공간에 대한 소방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안전한 지하철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지하공간의 모든 시설을 불연재로 시공해야 한다.

전동차 외부의 페인트도 불연성 제품을 써야 하며 광고판도 아크릴이나 PVC가 아닌 불연재료로 만들어져야 한다.

아크릴이 타면 시온 가스가 나온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학살 때 쓰여진 독가스와 같은 것이다.

지하공간에서 불이 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불에 타기 전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는다.

그런데 배기 팬과 급기(공기공급) 팬이 천장에 설치돼 있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유독가스를 제대로 빼낼 수 없다.

배출 능력도 모자랄 뿐만 아니라 연기는 위로 오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대피중인 사람이 유독가스에 노출되기 쉽다.

승강장.계단.통로의 바닥으로부터 1.5m 높이에 급기 팬을 적당한 거리마다 설치하고, 배기 팬을 천장에 달아야 한다.

이러면 화재로 유독가스가 발생하더라도 급기 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를 대피자가 마실 수 있으며 시야도 확보된다.

또한 유독가스는 급기 팬에서 나오는 공기에 떠밀려 천장 배기닥트를 통해 외부로 신속히 배출될 수 있다.

이번 참사에서는 전원이 나가면서 유도등과 비상조명등이 꺼져 인명 피해가 컸다.

지하철역사 안의 일반조명은 한전에서 공급된 전력을 쓰고 있는데 이를 비상전원 시스템으로 바꿔 무슨 일이 있어도 단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사에는 비상발전기가 설치돼 있지만 정전 후 가동이 되는데는 5~1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외부 전기가 끊기더라도 즉시 작동할 수 있는 회전형 무정전 전원장치(Dynamic UPS)로 바꿔야 한다.

계단 양쪽 난간과 방화셔터 출입문에는 형광테이프를 설치하고 출입문 쪽의 조명은 다른 곳보다 훨씬 밝게 해야 한다.

위험에 빠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밝은 쪽으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보완해야 할 점은 이것 외에도 너무도 많다.

지하철역의 화재경보기가 평소 오작동이 잦아, 이번 사고 때도 지하철공사 직원들이 태무심하게 대응했다고 하는데 안될 말이다.

비싸더라도 오작동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복합형 열.연 감지기로 교체해야 한다.

또한 소방관의 진화작업이 시작되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더라도 고장이 나지 않도록 지하공간내의 모든 전기설비는 방수형 제품을 써야 한다.

물론 위의 장비 등을 설치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투자다.

신경우(부창엔지니어링대표 소방설비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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