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관리청' 신설 무용론 제기

입력 2003-03-13 12:08:17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신설하기로 한 재난관리청이 '옥상옥'(屋上屋)일 뿐 재난.재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통합방재 시스템은 소방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도 전문가인 이들을 배제한 채 비전문가인 행정관료 중심의 재난관리청을 만드는 것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정부는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인명구조와 신속한 사고수습을 위해 재난관리청을 신설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행정자치부 내에 재난관리시스템 기획단을 만들기로 의결했다.

재난관리시스템 기획단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4월 관련 법안을 임시국회에 상정, 빠르면 8월쯤 재난관리청을 신설한다는 것.

그러나 돌아가는 사정은 영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에서 총리실 국무조정실의 최경수 사회문화조정관 주재로 행자부 및 각 시.도 소방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재난관리청을 '소방청' 혹은 '소방재난청'으로 명칭변경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소방 공무원들은 재난의 방재.예방 업무를 그동안 소방국에서 전담해왔음에도 재난관리청 신설논의가 소방분야 공무원들을 배제한 채 이뤄지고 있다는 등 문제점을 제기한 뒤 소방청 등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 측은 관련부처 등과 협의, 명칭변경 여부를 신중히 재검토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계획하는 이같은 재난관리시스템은 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가 중심이 되어 구축되는 것으로서, 과거에도 있었으나 실효성이 의문시된 기형적 모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정부는 재난관리법을 제정, 현 행정자치부 내에 재난관리국을 신설했지만 기술직이나 전문직보다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업무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기구는 신설됐지만 탁상에만 머물고 현장성과 전문성이 확보된 통합적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

한 소방공무원은 "재난관리청 신설은 기존 민방위통제본부 소속의 재난관리국을 승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재난 구호 업무를 맡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대형참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방재학 교수는 "행자부의 민방위재난통제본부를 보면 비전문가인 행정직의 위세에 눌려 소방직이 기를 못펴고 있다"며 "정부 방침대로 재난관리청을 만들더라도 우리나라의 방재.구호 시스템 개선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재난관리과 관계자는 "아직 기획단을 조직하지 않은 상태로서 구체적인 계획은 잡혀 있지 않다"면서도 "재난관리청 업무를 종합해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행정 공무원들이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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