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다중 밀집장소의 위난시 안전성에 대한 시민들의 눈대중 점검이 한창이다.
그러나 매일신문 취재팀이 특히 취약할 수 있는 고층건물 화재 대비태세와 지하상가 상태를 점검한 결과, 두 부분 모두가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안한 지하상가=대구시내 지하상가들도 급속하고 광범하게 번지는 화재에 대한 대비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화성 상품이 많이 팔리고 있어 큰 불로 번질 위험이 높지만 대피 때 방향감각을 잃기 쉬운 구조를 하고 있는데다 출입구가 한정돼 구조활동조차 여의찮았다.
배연이 어려운 상황도 이번 참사 지하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 3일 오후 2시쯤 대구 ㄷ지하상가에서는 화재 때 방화셔터가 내려와야 할 자리에 마네킹이나 책더미 등이 쌓여 있었다.
통로까지 옷가지가 진열된 곳도 상당수였다.
아동복점 주인 이모(43·여)씨는 "소방점검 때가 되면 방화셔터 자리의 물건을 치운다"며 "20년 가까이 된 점포가 많아 방염 처리한 자재들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불안해 했다.
1985년 문을 연 이곳은 '2종 방화 건물'(연면적 1만㎡ 미만). 전체 330개 점포 가운데 불이 옮겨붙기 쉬운 의류·주단·포목을 다루는 점포가 221개가 돼 소방서로부터 '대형화재 취약 대상'으로 분류돼 있지만 소방훈련은 연간 1회가 고작이라고 했다.
더욱이 대피훈련에는 전체 점포의 10% 가량인 30여명의 업주·직원들만 참가해 30분 가량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할 뿐이라고 했다.
◇방화장치 불완전=관리사무소측은 70여m 간격으로 방화셔터가 설치돼 있고, 화재 때 배연구로 자동전환되는 800여개의 환기구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방재 전문가들은 "이들 환기구에는 배연 능력이 거의 없고 방화셔터도 출입구에 설치돼 오히려 피난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로역 사고 때도 환기구가 작동했지만 연기는 역 출입구로 몰려 나왔었다.
통로천장에 4~5m 간격으로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할까 싶을 정도로 시커멓게 녹이 슬어 있었다.
대구 ㄴ지하상가엔 20여개 의류점포가 빽빽이 들어섰지만 출구는 단 두 곳뿐이었다.
혼잡한 시장통으로 열린 출구는 너비 4m, 높이 1.8m에 불과할 정도로 좁았다.
한 가게 주인은 "불이 나면 연기가 빠져 나갈 곳으로 사람이 빠져나가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 구간에서 진행 중인 지하상가 공사장도 이번 지하철 참사로 방재 설비 보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류지하공간 개발사업 건설 담당자는 "현재의 방재시스템 정도로는 중앙로 참사 같은 것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라며 "이번 사고가 수습되는 대로 지하철건설본부가 배연·방염 설비 등을 대폭 수정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으로 안다"고 했다.
7호광장 부근 지하 1·2층(3층 정거장)에 들어서는 지하상가 '두류1번가'(점포 260개, 3만5천㎡)와 반월당·두류동·봉산육거리 등 지하공간 개발사업은 일부 공사만 남은 상태. 대다수 내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의 진단=방재 전문가들은 "배연이 안되는 상황에서 셔터를 내려 인명피해를 키우게 만드는 잘못된 시스템이 대다수 지하공간에서 운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독성 매연 배출을 위한 배연 설비와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셔터가 연계성 없이 작동토록 돼 있다는 것.
방화셔터와 관련해 경원대 소방안전과 박형주(46) 교수는 "대구지하철 사고 때도 출입구에 방화셔터가 설치돼 피난에 장애를 초래했다"며 "방화셔터 부분이 유일한 출구가 돼선 안되고 외부로 통하는 별도 계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지하공간 방화셔터가 먼지 등 미세물에도 자주 작동하는 바람에 운용자가 수동으로 전환시켜 놓은 곳이 많아 상황 대처를 늦잡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환기구에 대해 전문가들은 "화재 때 배연구 역할을 대신토록 한다지만 환기구로는 거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방서 한 관계자는 "화재 때 5분만에 연기를 다 빨아올리지 못하면 환기구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연기 배출을 위해 별도의 배연닥트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생활시민실천연합 이규원 행정실장(56)은 "지하상가는 특성상 불이 날 경우 의류점에서 유독가스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어 배연시스템을 일반 건물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하상가 높은 벽에 붙여져 있는 내부 피난유도등도 화재시의 짙은 연기에 대비해 바닥으로 옮겨 설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지하상가 관련 법은 화재 등 비상사태 때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오히려 키우도록 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배연설비는 소방법, 방화구역은 건축법 등의 적용을 받도록 된 이원화 규정때문이라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의 소방규정을 소방법으로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시됐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