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실종자가족들 중앙로역 노숙 6일째

입력 2003-03-01 11:46:02

최소 200여명의 목숨을 삼킨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그들이 가고 남긴 빈 자리를 지금 그 가족들이 메꾸고 있다. 진상 규명과 실종자의 법적 사망 인정을 요구하는 100여명이 아예 잠자리까지 꾸리고 있는 것.

지난달 27일 오후 1시쯤 다시 가 본 중앙로역 지하 1층은 실종자 가족들과 추모객 200여명 등으로 북새통이었다. 출입구 벽에는 지난 25일 안심기지창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휴대폰, 유골 등의 사진 20여점이 나붙어 처참함을 더했다. 지켜보던 한 시민(33.여)은 "대구시가 제정신이냐"고 어이없어 했다.

일부 가족들은 밤에 잠을 설친 듯 한낮인데도 곳곳에선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옆의 또 다른 가족은 삼삼오오 모여 걱정스런 표정으로 앞 일을 걱정했다. 또 옆 복도에는 국화꽃을 든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고 돌아 나가는 일부 추모객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가족들은 차가운 돌 바닥 위에 10cm 두께의 판넬을 놓은 후 담요를 깔고 덮은 채 6일째 버티는 중이었다. 세면은 지하 2층이나 인근 아카데미 시네마 화장실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하지만 더 많은 가족들은 아예 씻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문에 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이들이 아예 이곳에서 장기 숙식하려 하자 시민회관에 있는 적십자 봉사자들은 끼니 때마다 식사를 배달해 주고 있다.

이곳 실종자 가족들은 본래 대구시민회관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 머물렀으나 지난 22일 대구시가 참사 현장을 물청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이곳으로 옮겨 왔다. "현장을 지켜야겠다"는 것. 그때문에 이제는 시민회관보다는 중앙로역이 더 비중 있는 실종자 가족 센터가 됐고 시민들에게도 점점 보다 상징적인 현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시민이 몰리다 보니 공기가 탁해져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실종자 가족 이지운(25.대구 복현동)씨는 "공기가 너무 나빠 목이 따갑고 밤에 추위와 싸우는 일이 너무 힘겹다"고 했다. 또 "이곳에 온 첫날은 마스크를 하고도 코 주변이 새까맣게 변하더라"고 했다. 이씨는 "실종자를 하루빨리 법적 사망자로 인정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건강을 돌보던 한의사 자원봉사자인 안남규(33)씨는 "바닥이 차갑고 공기가 탁해 관절과 기관지에 해롭다"며 "특히 노약자들은 면역력이 약해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 차가움만은 물론 아니었다. 딸을 잃었다는 박남희(44.경북 칠곡)씨는 "자식 시체도 못찾고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잃은 자식 얘기만 나오면 금방 눈물이 박씨의 온 얼굴을 적신다고 했다. 올케를 잃었다는 김옥자(53)씨는 "올케는 영남대병원에 가 약을 타려고 신천역에서 지하철을 탔으나 CCTV에도 나타나지 않고 정황 증거도 분명찮아 사망자로 인정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답답해 했다.

그러는 사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는 대책위 한 임원이 마이크로 "오후 4시에 국과수 브리핑이 있다"는 등 사태 진행 상황을 수시로 알렸다.

중학생 딸을 잃었다는 이봉수(51.회사원)씨는 "일주일 후에는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며 "투쟁에 앞장서고 싶지만 생업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고 안타까와 했다. 사고 발생 10일이 지났으나 중앙로역에서는 지금 또다른 참사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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