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중견작가 콩트릴레이-맞습니다.맞고요

입력 2003-03-01 09:54:15

오늘 저 노통장이 방송국의 초청을 받아 이곳으로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직도 마음들은 굳어있을까. 저를 보는 시선은 어떨까 따위였습니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생긴 저의 팬 카페에는 만여명이 모여들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제 인기가 뜰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데 나이 많으신 기사분이 도로가 막히자 혼잣말처럼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놈의 지하철 공사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다였지요. 아니 대형 크레인 한 대가 일차선을 막고 서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공사하는 건지 모르겠다'하는 말은 우리 개그맨 뺨치는 코미디가 아닙니까. 대구지하철이 코미디가 되면 곤란하지요. 맞지 않습니까?

그 기사분은 내 이마의 한일자로 깊게 파인 주름살을 힐끔힐끔 돌아보고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외지손님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어요. 입춘 지난 요즘 아침마다 환경미화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하는데 지금 보면 꽁초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게 아니란 이야기였어요.

지난 두어달 사이에 길거리에 무수히 뱉아 놓은 것들이 겨울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비로 쓸어도 쓸려지지 않을 만큼 얼어붙어 있다는 겁니다.

무엇이 아직도 그렇게 녹지 않고 붙어있느냐고요? 맞습니다.

지난 대선 후 시민들이 뱉아놓은 허탈감과 분노와 상실감 거기다 또 불안감까지 뒤범벅이 되어 튀어나온 말들이 아주 단단히 굳어있어 아무리 비질을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지요.

그 정도의 분위기는 저 노통장도 짐작합니다.

하고말고요. 척 하면 삼척 아닙니까. 아마 그당시 술집은 물론 공원 식당 목욕탕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두사람 이상이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되었던 그 상실감을 누가 한줄로 잇는다면 경부고속도로 옆을 나란히 잇고도 남을 분량이 된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러나 한가지 여기와 인연이 별로 없는 제가 생각해봐도 그 말들의 씨는 전부 살아있지 않겠지요. 저는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전부가 죽어도 곤란할 것 아닙니까. 이 노통장도 여기보다는 조금 남쪽이지만 경상돕니다.

이 나이지만 예쁜 아가씨 보면 내 아를 낳아도 하고 싶고 또 니 이빨 닦았나 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틀어지는 그런 기질이 제게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데리고 있지요. 애들이 잘못하면 어쩝니까. 매를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저 노통장이 이곳에 초대받아 올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말이 개그맨이지 지난 5년동안 공개방송의 녹화직전 방청객의 열기를 띄우는 바람잡이역을 주욱 해왔지요. 무대 위에 있으면서도 카메라와는 인연이 멀었으니 내 심정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지금 내 이마의 깊은 주름살은 아마 그때 생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주름살 하나로 인기정상에 설줄 알았다면 두 개 세 개 주름살을 만들었을텐데 말입니다.

제가 조금전 5년이란 말을 하니 한 정객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5년 뒤의 모습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지요. 5년 뒤의 일들을 생각하고 준비했다면 누가 지금같은 꼴을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한사람만의 탓은 아닙니다.

한번 뒤를 돌아보세요. 5년이든 10년이든 성한 몸 갖고있는 사람 누구 있습니까.

그 정객의 말에 적당한 훈수를 던진 또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요. 그는 어떤 정당에게 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졌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 엄청난 조직과 인력을 갖고서도 당 시대를 꿰뚫어보지 못했다는 고백은 몸을 깎는 후회가 아니겠습니까. 후회가 맞습니다.

맞고말고요.

대체 후회란 감정적이기 쉬운데 그런 감상으로 오늘과 내일을 읽으려다간 또 다시 후회를 되풀이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오늘 저는 방송국에 초청받아 왔으니 출연료만큼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 노통장은 지금도 대선때의 녹화장면을 보고 또 봅니다.

유세장면이지요. 재미있어서 보는 게 아니고 아이디어도 얻고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섭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찔한 충격을 받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서문시장 유세장면입니다.

서문시장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이지요. 저도 그 자리에 서 봤습니다만 제가 받은 것은 서해 갯벌에 물 빠져나가는 듯 한 외면과 무관심이었습니다.

그 며칠 뒤 같은 곳에서 다른 당은 마치 게릴라 콘서트에 군중 모이듯이 순식간에 수천의 시민들이 집결하더란 말입니다.

그 환호와 끊이지 않는 박수를 나는 보았지요.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날 찬조연사로 나온 여배우 엄씨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 눈물은 분명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는 승패가 결정된 것으로 생각했지요.

지금까지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정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어떤 공원을 정한 코스인 것처럼 찾듯 지금까지 서문시장은 정치적인 의미를 제공해주는 뜨거운 한판의 무대였습니다.

여기 사람들의 기질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곳이 서문시장입니다.

큰장기질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맞지요. 저 노통장도 서문시장의 함성과 박수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말고요.

지난 겨울 죄없는 간에게 엄청난 고통을 곱배기로 준 분 많을 겁니다.

말 못하는 간이라도 하루 이틀 쉬게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심정 저는 잘 압니다.

저와 같은 동기들이 무대위에서 환호와 박수를 받고 있을 때 저는 그러지 못했거던요. 5년동안 그랬단 말이지요.

그러나 요즘 제 간은 이마의 한일자처럼 저도 기분이 좋은지 한일자로 크게 웃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스포츠신문 1면같은데 대문짝만하게 난 기사보고 좋아하지 않을 간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맞지요.

간도 간이지만 지난 겨울 여러분은 정치관계 뉴스는 아예 접어놨다는 소문을 저도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죽기살기로 열독열청하던 정치관계 뉴스를 하루 아침에 접고 먼산 바라보고 있는 그 심정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한발짝만 더 뛰었더라면 골인 순간 머리라도 내밀었으면 싶었던게 솔직한 여러분의 마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거의 동시에 골인한 형편이 되고 말았으니 습자지 한 장 차이같은 그 기록을 보고 얼마나 아쉽게 생각했겠습니까.

이곳에는 사과가 이름있듯 제 고향은 감이 유명하지요. 수입과일이 판치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사과는 좋은 과일이듯 감도 그 깊은 맛을 자랑하지요. 그러나 사과나무는 농약을 뿌려야 하지만 감나무에 누가 농약칩디까. 이 노통장 농약처리하지 않은 무공해 과일처럼 순수한 웃음을 여러분에게 선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대만큼 웃음을 드리지 못할때는 종아리 걷고 매를 맞도록 하겠습니다.

맞고말고요.

이제 저는 열흘 후의 취임식에 정식 초대받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이 노통장의 보람과 기쁨과 만족은 우리 봉숭아학당 그곳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본다면 그 높이가 높을수록 아름답게 보여질 것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으로 있지만 그러나 그것도 조금 위로 올라가서 내려본다면 아름다운 채색으로 나타나 보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위로 좀 올라가서 봅시다.

인근 산으로 올라가 보던지 도심의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 보던지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내려다보자는 말이지요. 설령 지금 우리들이 살고있는 모습이 비록 찢어지고 나누어진 상처로 얼룩져있지만 우리가 꿈꾸는 그 높이는 그런 모두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할 것입니다.

이 자리의 방청객 여러분, 여러분이 저 노통장을 한번 더 이곳에 초청해 주신다면 그때는 제가 맞습니다, 맞고요가 아니라 이제 어떻습니까, 맘에 들지요. 하는 말을 유행시켜 대박을 터뜨리도록 하겠습니다.

믿어주세요. 그리고 박수 한번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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