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거족 안동 권씨 권태사의 후예 14개파 중의 하나인 '복야파'의 한 갈래가 500여년을 세거해 온 안동시 풍천면 가일(佳日)마을.
학가산 줄기가 서남으로 뻗다 풍산평야 모서리에서 우뚝하게 마을 뒤편으로 정산(井山)을 일으켜 두 봉우리를 나란히 맞세우고 있다.
한 봉우리는 활처럼 서남으로 휘어 청룡(靑龍)을 이루고, 또 한 봉우리는 마을 입구에 내려앉으니 가일마을이 정산과 두 봉우리에 감싸여 있는 듯 하다.
마을 뒤쪽에는 갈피갈피 암벽으로 무늬를 이룬 예쁜 봉우리가 병풍을 두르고, 마을 입구에는 가곡지(佳谷池)가 있어 정산에 안긴 마을 그림자를 잔잔한 물결에 아로새겨 마치 천연의 산수도 한폭을 보는 듯 하다.
안동시 풍산읍을 지나 지방도를 타고 하회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가일마을.
일찍이 고려때 왕(王)씨에 이어 풍산 류(柳)씨가 살다가 조선초기에 안동 권씨들이 입향해 집단부락을 이룬 곳이다.
이 후 영주의 순흥 안씨들도 새로이 입향해 한 터전을 이루고 있다.
조선 세종때 정랑을 지낸 권항(權恒.1403~1461)선생이 입향조다.
그는 이 마을 부호였던 류서의 딸과 혼인해 장인에게 부근의 임야와 많은 전답을 물려받아 등과한 후 이 곳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권항은 1441년 문과에 급제해 감찰로 명나라를 다녀와 거창현감과 호조정랑, 성균관 사예 등을 역임하고 세조 2년 영천군수로 부임해 그곳에서 59세로 생을 마쳤다.
이 후 500여년간 이 마을에는 수많은 선비들이 배출돼 영달과 공명을 탐하지 않고 도덕과 학문을 실천했으며, 구한말에는 권오설(權五卨.1897~1924)선생 등 구국운동에 이바지한 지사 여럿이 광복대업에 참여했다.
주민 권오걸(權五杰.81)옹은 "이 마을 출신 항일 지사들이 대부분 사회주의 운동 전력을 가지고 있어 오랫동안 이래저래 핍박 받은 게 사실이다"며 "권오설선생의 업적과 항일정신이 새롭게 조명돼 마을입구에 기적비를 세우고 뒤늦게나마 뜻을 기릴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마을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00여년의 회화나무와 버드나무가 지킴이처럼 버티고 서있다.
마을과 뒷산 그림자를 한아름에 품을 정도로 넓은 저수지와 그 앞으로 영남에서도 손꼽히는 기름진 풍산평야가 시원스레 열려 있다.
또 마을 양쪽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바람이 들고나는 것을 막고 있다.
자연환경의 넉넉함과 풍요로움 덕분일까. 이 마을의 풍속이나 인정 또한 부드러워 지주들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소작농들이 소작료를 아무리 박하게 내거나 아예 안 가져와도 이를 탓하여 구박하거나 독촉하는 일이 없었다 한다.
특히 몇몇 부호들은 자기집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지나는 과객들을 맞아 대접하기를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웃의 큰 일에는 항상 돈과 물건을 보내고 객지 사람들에게도 홀대하거나 따돌림없이 훈훈한 인정으로 대해 화기(和氣)가 넘쳐나면서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佳) 밝은(日) 마을'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후덕함을 지닌 가일마을도 지금은 쇠락해지는 전통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해 안타깝다.
마을 곳곳에는 주인 잃은 고가들이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고, 무너진 흙 담장과 깨어진 기왓장에는 마른 이끼만이 세월의 허망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곳에도 지난해부터 유교문화권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마을 안길 도로까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말끔히 포장됐고, 고가옥 정비사업이 계획되고 있다.
지금은 100여가구에 27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안동 권씨(37가구)와 순흥 안씨(16가구)가 마을 동서편으로 갈라져 터를 잡고 있고, 안동 김씨 등 타성들도 들어와 있다.
50~60년 전만해도 200여가구의 권씨와 안씨들이 양분돼 뚜렷한 세력을 형성해 왔다.
특히 이 마을 서편 산자락에는 1768년에 설립된 풍서초등학교가 자리해 이 마을의 번성했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현재는 6학급 6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학교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이 곳에 1818년 노동정사(魯洞精舍)를 건립해 부근 아이들을 가르쳤다.
마을 노인회장 권상오(73)씨는 "정월에 지내던 동제나 걸립행사도 주민들의 종교적 입장차로 사라진 지 오래다"며 "정부나 안동시가 나서 전통을 되살리려 노력하지만 겉모습에 불과하고 속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허탈해 했다.
그래도 안동 권씨 복야공파 후손들은 가일마을의 전통적 내력과 마을 모습이 여느 전통마을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문화재는 물론 숱한 인물배출과 아직까지 현대화의 소용돌이에 덜 훼손된 전통의 고고함과 고집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여있다는 것.
한국국학진흥원 권대인 총무과장은 "전통 기와집이 10 여채에 달해 하회마을과 비슷할 정도"라며 "영남 8 명지(名地) 중의 한 곳으로 신식 건물이 거의 들어서지 않았으며, 특별한 관습은 없어도 온 마을 사람들이 화합하고 길.흉사에 내집일 보듯 하는 인정은 전통적 후덕함이 그대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화산(花山) 권주(權柱)선생의 종택인 안동시습재(安東詩習齋.문화재자료 370호)와 수곡종택(樹谷宗宅.중요민속자료 176호)은 이 마을의 대표적 문화재다.
권주선생 종택보물로 권주종가문서(보물 549호)와 권주종가문적(보물 1002호)이 보관돼 있으며, 수곡종택 별당 일지재(一枝齋)는 자손들로 하여금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정진할 것을 엄중히 권고한 조상들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지조와 청렴으로 한 시대를 고집해 온 가일 전통마을의 촌로들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현대화 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 생전에 사라져버린 전통의 모습을 되살려 내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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