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업그레이드 이것만은 버리고 가자-(10)인색한 기부문화

입력 2003-01-21 09:39:10

매년 연말이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전국 거리마다 일제히 걸려 '귀하고 아름다운 손'을 기다린다.

하지만 구세군 대구.경북지방본영 관계자들은 '올해는 어떨까'라는 의문 부호를 떨치지 못한다.

전국에서 대구.경북지역이 항상 가장 낮은 모금액 증가세를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지난해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한 모금액은 8천670만원. 2001년 연말모금보다 14%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같은 증가치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 다른 지역의 예를 보면 증가세가 지난 2001년 연말 대비 20%를 넘긴 곳이 대다수였다.

결국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구.경북지역은 또다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세군 대구.경북지방본영 안현숙간사는 "대구.경북지역은 서울.경기 등 다른 지역보다 항상 모금액 증가세가 떨어진다"며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기부문화에서 대구.경북지역민들이 '꽉 막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내 것만 지키려 하고 남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지역은 '스크루지 동네'라는 결론을 내려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 대구.경북지역의 뒤떨어진 기부문화에 대해 애써 변호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부족이다.

또다른 통계가 '변호인들'의 주장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 이 달까지 계속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말연시 집중모금에서 대구는 지난 달 말까지 5억5천여만원의 모금액을 기록했다.

이는 2001년 같은 시기 6억9천여만원에 비해 1억원이상 뒷걸음질친 것.

대구의 이번 연말연시 공동모금회 모금액은 목표치의 80%에 겨우 도달한 수준이다.

전국 대다수 지역의 실제 모금액이 목표의 100%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그 이전에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01년 10월부터 2002년 9월말까지 1년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접수된 이웃돕기 액수는 16억7천여만원. 시민 1인당 664원 꼴이었다.

지난해 대구의 1인당 기부액은 전국 7대 도시중 가장 적은 것. 전국 16개 시도 평균(1천271원)보다도 낮았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남창현부장은 "모금담당 입장에서 볼 때 지역민들은 보수성이란 차원을 넘어 어떤 때는 폐쇄성을 갖고 사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까지 갖는다"며 "언론이 홍보를 하고 사회단체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갖는 등 아무리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남부장은 지역이 기부문화의 불모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 소극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정서속에서 체면중시 문화까지 덧붙여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내면 많이 내야지 남부끄럽게 적게 낼 바에야 안 내겠다"는 다소 엉뚱한 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경북지역 이외의 곳에서 복지단체 근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곳에 오면 지역의 분위기를 확실히 느낀다고 말한다.

청주에서 5년간 근무했던 굿네이버스 대구지부 류종택소장은 "청주에서 근무할 때는 그 곳 사람들의 높은 기부열기, 그리고 자원봉사 열기를 느꼈다"며 "그런데 대구는 도시규모가 훨씬 적은 청주보다 기부문화에서는 더 떨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류소장은 무뚝뚝한 이 곳 사람들에게 '이웃과 정을 나누자'는 얘기를 하고 기부를 권하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이 곳 사람들의 보수성은 '좋고 아름다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까지 늦추고 있다고 류소장은 진단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기부를 하는 사람까지 마음이 편치 않고, 결국 기부를 더욱 꺼리는 현상까지 연출된다.

자신의 월급을 일정 부분 떼내 적립, 어려운 이웃을 돕는 대구시내 한 인사는 이를 취재하자는 언론의 요청에 손사래를 친 바 있다.

소문나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된다고 그는 얘기했다.

기사가 나가면 훌륭하다는 칭찬보다 '무슨 의도로 그런 일을 하느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이 날아온다는 것.

복지단체 관계자들은 지역의 낙후된 기부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훈련'에 들어가야 한다고 제시한다.

모임이란 이름으로 패거리를 만들어 다른 모임을 공격하는 행동을 그만두고, 하나의 모임이 다른 모임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또 먹고 마시는 모임을 지양하고 건전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바꿔보라고 이들은 충고한다.

모임 회비 중 일부를 떼내 기부에 사용하고, 모임도 자원봉사를 함께 하는 식으로 바꾼다면 자연스레 기부문화 불모지로 '낙인찍혀온' 지역사회의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생각이다.

가정복지회 조재경실장은 "우리 지역민들은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모임의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먼저 나 아닌 다른 부분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하고, 먼저 다가서려고 하는 노력도 뒤따라야하는데 우리 지역의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더 많은 훈련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조실장은 또 "최근 지역의 일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기부클럽을 만드는 등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는 노력도 보인다"며 "이 세대들이 훈련을 쌓고 기성세대가 되면 이 지역도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실제로 가정복지회에 따르면 최근 20.30대 젊은층들은 직접 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어와 기부를 약속한다든가, 자원봉사에 참여하겠다는 적극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는 것.

이런 가운데 최근 대구지역 한 기업이 일부 직원들의 동참 속에 소득의 1%를 기부하는 운동에 참여,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대구백화점은 지난달 '1% 나눔운동'에 참여키로 하고 매월 일정액을 모아 매년 연말 모은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키로 했다.

이 회사 최영대 홍보팀장은 "전체 직원들의 30%정도가 참여키로 했다"며 "연말에는 약 6천만원 가량의 성금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1% 기부운동을 시작하자 600여명의 시민들이 이에 참여하겠다며 기부를 약속, 지역사회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는 반가운 목소리도 들린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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