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보와 보수의 상생관계

입력 2003-01-08 16:01:27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과 더불어 차기 정부를 준비하는 인수위원회가 가동되면서 진보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문제, 남한과 북한 사이의 문제, 재벌-검찰-언론 개혁의 문제, 공직의 인사 승진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이상하게 여겨졌던 주장들이 이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회의 비판적 지대에서 저항과 감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노조와 시민단체가 불순한 세력이 아니라 이 사회의 중요한 발전의 축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진보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이와 같은 소중한 기회가 그동안 전혀 마련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등장한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도 이런 기회는 주어졌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 정부도 과거 군사정권 시대의 봉건적 정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가신정치나 보스정치로 귀결됨으로써 기회를 고양시켜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3김씨와 더불어 진행되어온 밀실정치는 막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차기 정부는 정치·경제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관료주의적 지배 형태를 종식하고, 시민의 여론을 통하여 공론장을 활성화시켜 새로운 정치를 일구어 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떠맡았다.

이 과제를 정성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진보의 물결은 이제 더 이상 거스릴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새로운 물결에 대한 기대치도 강하지만, 다른 한편 이런 물결이 밀려듦으로써 불안해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원래 사람의 삶이란 안정과 변화라는 두 가치 아래서 갈등하는 법이다.

변화가 가져다 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자나 지금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자는 당연히 현재 속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를 그대로 붙들고자 할 것이다.

또 현재의 상황이 자신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족쇄로 여겨져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통하여 새로움을 도모하려고 하는 자는 현재 속에 담겨 있는 과거를 단죄하고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과거 속의 현재이거나 미래 속의 현재일 수만 없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현재는 절대화된 과거나 미래의 노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해방 이후의 우리 현대사는 과거·현재·미래가 상생(相生) 관계 속에 자리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수구 세력과 급진 세력 사이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하여 서로 소모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좌우의 대립 구도로 인하여 진보와 보수의 상생 관계가 불가능하였다.

특히 기형적 보수주의가 일방적으로 주도함으로써 진보주의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활동 자체가 제대로 발현될 수 없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강화된 반공주의는 반민족주의자인 친일파나 반동 지주를 비판하는 세력마저도 좌파 빨갱이로 취급하였으며, 급기야는 매카시즘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또한 5·16 군사쿠데타를 통하여 성립된 박정희 군사정권도 반공주의와 경제개발주의를 절대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외와 억압 현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세력들을 급진 좌경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그 이후의 신군부 정권에서도 지속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는 반공주의, 안보주의를 절대 이념으로 삼아 모든 이념을 이 이념 아래 종속시키는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미국을 비판하거나 북한을 돕고자 하는 주장이 나오면 이내 불순 세력으로 규정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진보 세력들은 보수 세력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좌우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진보와 보수의 발전적 관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보수세력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허물들을 벗어 던져야 할 것이며, 진보세력들은 한풀이보다는 합리적인 법치주의와 관용의 원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차기 정부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독려와 감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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