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업그레이드 이것만은 버리고 가자-(2)패거리 문화

입력 2003-01-03 15:37:13

대구.경북사람들의 무뚝뚝한 성격은 잘 알려져 있다. 가장(家長)이 경상도 출신인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부간 짤막한 세 마디 대화가 한때 널리 회자된 적도 있다. 이는 경상도 특히 대구.경북사람과 짧은 시간내 친해지거나 곰살맞은 대화 를 상상하기엔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간에도 쉽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스갯소리다.

사정이 이렇듯 대구.경북에 주민등록을 둔 타 지역 출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허물없이 지내기가 말처럼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대 구경북 거주 외지인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전체 인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구.경북 거주 외국인 수는 2001년 기준 대 구 1만4천478명, 경북 1만7천893명으로 약 3만2천300명(전체 0.6%). 대구.경북 전 체 530만명의 인구 가운데 10%를 잡더라도 타지 출신과 외국인 수는 50만명이 안 될 것이라고 대구시 기획관리관실 담당자는 추산했다.

알게 모르게 대구.경북민들의 의식 기저에 깔려 있는 배타주의가 더욱 문제다. 흔 히 대구.경북이 DJ정부 출범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해 이제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들 한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역작용이기에 앞서 근원적 으로는 지역민들의 기질적 측면에서 기인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뿌리깊은 유교 문화적 배경 때문에 유달리 지연, 학맥 등 인맥을 따지다보니 타지 사람들은 괜히 소외되고 이곳에서 발붙이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외지인들은 대구경북사 람과 친해지기 힘들다는 오해를 사게 되고 결국 지역 경쟁력마저 떨어뜨리는 원인 을 제공하고 있다.

타 지역 사람들이 대구.경북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수' ' 강한 연고주의'라는 여론조사가 얼마전 있었다. 달리 말하면 패거리 문화가 어느 지역보다 강하다는 말인데 사실이든 아니든 점차 이 지역의 주된 이미지로 고착되 는 듯하다.

물론 이같은 배타주의가 대구.경북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지난 16대 대선당시 호남지역의 노무현 당선자 지지율이 90%를 훨씬 상회, 대구.경북민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질책이었다. 호남도 호남이지만 대구.경북도 이에 못지 않게 보수적인 기질과 연고주의가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구출신으로 부산대 예술대에 재직중인 박성완 교수는 "대구출신 인사들이 부산 경남권 대학에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대구경북권 대학에는 지연과 학연 등을 따져 외지 출신 교수의 임용을 꺼리는 것 같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에도 우리와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리옹은 지역민들의 성격이 전반적으로 무뚝뚝하고 폐쇄적인 데다 외지인을 배척하는 기질이 강한 도시로 유 명하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섬유산업이 발전한 리옹은 내륙도시인 탓에 외지인이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자연히 외지인 거주비율이 낮은 지리환경적 이유도 있 겠지만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쉽게 친해지기가 힘들다고 현지 교민이 들려 주었다.

소설가 김원우씨는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일을 좌지우지하려는 자세가 문제라고 지 적하고 "지역주의는 지나친 온정주의와 다르지 않다며 편협한 연고주의를 지양해 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을 무대로 작품활동을 해오다 몇 년전 계명대 문예창작 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김씨는 "생활하면서 지나친 연고주의를 피부로 느낀다며 서 로 대화조차 힘든 패거리 문화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대구.경북은 더욱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대구.경북인들의 기질에는 분명 장점도 있다고 전제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윤용 희 교수는 "어떠한 제도와 정책으로도 연고주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시민 들의 선진의식이 배양되어야 진정한 인적 화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DJ정 부시절 호남지역이 먼저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액션을 취한 것은 좋은 사례라고 꼽은 윤 교수는 앞으로 대구.경북민들도 적극적이고 개방적 자세로 연고주의에서 탈피, 차원높은 지역발전을 위해 변화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가 고향으로 지난 86년부터 대구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경북대 윤명구 교수 는 "부산에서 생활한 적도 있지만 대구에 살면서 대인관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은 경험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사람들과 어울리고 깊이 사귀다 보니 오 히려 푸근한 고향의 정도 느낄 수 있어 생활에 별 불편함이 없다고 밝혔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라는 저서를 펴낸 대구가톨릭대 노어노문학 전공 이득재 교 수는 가족주의는 파시즘의 씨앗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에게는 사회가 없 기에 사회적 모임도 없고, 모임이란 계나 동창회 또는 돈을 주고받는 결혼식이나 장례식뿐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가족주의는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이 를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사회, 민주주의를 획득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저자의 지론과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연고주의, 지역주의 또한 경계해야할 대상임 에 틀림없다. 진정한 민주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 것만 챙기고, 상대를 무시하는 고집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 말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구.경북 사람들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디를 가 나 경상도식 전통과 기질을 고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고집불통, 보수 로 비쳐진다. 2003년 새해, 이제 바뀌어야 한다. 좁은 지역주의의 울타리를 벗어 나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새로운 의식변화가 시급하다. 이런 자세 변화에서 대구.경북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찾는다면 더 값진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