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까치밥

입력 2002-11-27 15:17:00

어느새 앙상해진 감나무마다 빨간 홍시 몇 개씩 대롱거리고 있다. 사과나무에도 한두개씩의 사과가 달려있다. 새들이 오가며 쪼아먹기도 하고 다리쉼을 하기도 한다. 높은 꼭대기의 것들은 따기 힘들어 포기한 경우도 있겠지만 충분히 딸 수 있는 높이에 있는 것들은 날짐승들의 겨울을 걱정하는 까치밥 인정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고(故) 김남주도 그의 시 '옛마을을 지나며'에서 '찬 서리 /나무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던 그 질박한 정이다.

매년 음력 10월에 열리는 묘사도 거진 끝나간다. 지난 60,70년대초, 그 시절만 해도 묘사는 시골아이들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쌀쌀한 늦가을, 마을 앞뒷산에 제관들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떼지어 우르르 산에 올라갔다. 묘사 후의 떡조각을 얻기 위해서였다. 머리통이 좀 굵은 아이들은어떻게든 머릿수를 늘려 떡 한 조각이라도 더 얻을 양으로 온갖 궁리를 짜내곤 했다.

소녀들은 칭얼대는 젖먹이 동생을 업고 가기도 했고, 개구쟁이 녀석들 중엔 한쪽 무릎을 세워 모자 하나 처억 걸쳐놓고는 "야(이 애)도 있심더"라며 능청을 떨기도 했다. 아이들은 11월의 찬 바람 속에 반쯤은시퍼렇게 얼은 얼굴로도 싱글거렸다. 그런 아이들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어른들은 짐짓 모르는척 두툼하게 떡을 나눠주었다.

그 시절의 묘사떡나눠주기 역시 까치밥 인정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뿐만 아니라 추수철에 농부들은 떨어진 이삭들을 알뜰히 줍지않았고, 더러는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했다. 가난한 이웃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였다.세월이 좋아져 이제 묘사떡 얻으러 오는 아이들도 없고, 밀레의 '만종'에서처럼 이삭줍는 모습들은 더더욱 볼 수 없다.

사흘후면 12월. 벌써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며 캐럴송이 연말 분위기를 돋운다. 가진 것이라곤 가난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 춥고 더 배고픈, 눈물나는 계절이다. 더구나 올해 12월은 대선 열기로 진작부터 핑글핑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복지시설 관계자들은가

뜩이나 메말라가는 사랑의 손길이 이 겨울에 더 줄어들까봐 걱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구의 ㅈ씨는 유난히 이번 12월이 기다려진다. 며칠 전 숙부의 첫 기일을 맞아 참석했던 제사 때문이다. 갓 스님이 된 사촌동생이 제주가 돼 제사를 주재했는데 모인 친척들 중엔 천주교인과 개신교인들도 있었다. 첫 제사인 만큼 친척들은 저마다 얼마간씩의 부조봉투를 내놓았다.

제사가 끝나자 스님은 가족들과 의논했다며 부조봉투 전체를 ㅈ씨에게 주며 말했다. "곧 구세군 냄비가 나올텐데 거기 넣어주세요. 아버님도 이걸 더 기뻐하실겁니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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