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大學 '기여입학제'

입력 2002-11-21 15:10:00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시대는 '지식기반 사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때문에 모든 국민의 '대졸자화'가 아닌 양질의 교육을 받은 '창의적인 인재'의 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대학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도 사회가 요구하는 우수 인력 배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지금 위기의식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취직이 어려워 졸업 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해외 유학이 보편화되면서 대학 교육 서비스 시장은 이미 국경을 넘어 '외제 교육'을 선택해 소비하는 바람에 밀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대학 입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많아진 상황이 현실화되면서 대학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특히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사립 대학들은 생존의 몸부림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육지책의 하나로 나온 게 '기여입학제'라 할 수 있다.

대학 기여입학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지난 3월부터 정부에 기여입학제 도입을 건의해 온 연세대는 교육 당국의 불가 방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입시부터 강행할 움직임을 보여 본격적으로 쟁점화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사립 대학의 발전을 위한 재정 확충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이유지만,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는지…. 이 문제는 1986년 이후 수시로 제기돼 왔으나 그때마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반발에 부닥쳐 유보돼 오지 않았던가.

경제 위기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비싼 과외를 통해 일류 대학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면 그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부와 계층의 세습화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지 않을까.

게다가 '돈이면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고가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성서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건 '왜'일까.

수험생들이 자기 실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었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이 흔들리고, 국민적.계층적 위화감과 박탈감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금주의와 학벌주의가 만연하고, 마치 전쟁과 같은 대학 입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력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손쉽게 입학할 수 있는 길은 심사숙고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연세대의 강행 의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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