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클릭-남산동 초가골목

입력 2002-11-18 14:12:00

동성로에서 불과 5분 남짓 떨어진 중구 남산 2가.남산동 아미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70년대 한중간으로 잘못 들어선 느낌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그나마 비가 오면 우산을 비껴 쓰고 가야할 판이다. 30년된 구멍가게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였지만 뿌연 나무창틀 사이로 정감이 느껴진다.

이 골목길에는 수 십년째 골목을 지키고 있는 초가집이 몇 채 있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왠 초가집?'이라고 하겠지만 슬레이트나 천막을 비집고 나온 것은 초가 지붕을 덮었을 짚이 분명하다.

절 보현사를 중심으로 약 여덟 채가 있는데, 그 중 몇 채는 재개발구역에 포함돼 헐리고 몇 채는 사람이 떠난 빈 집으로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재개발구역에서 제외된 네 채는 아직 철거 계획은 없지만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모를 일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전부 다 초가지붕이었지,뭐. 여기 남산동은 물론이고 이 일대는 다 초가집이었어·그런데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다 지붕을 바꿨지". 30여년간 아미산길 모퉁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문창범(64)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88년 올림픽에 맞춰 초가지붕을 급하게 슬레이트나 천막으로 덮어버렸어".

주민들의 말처럼 사실 외형적으로도 초가집이라 느낄 수 있는 집은 두어 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지붕을 슬레이트로 덮거나 천막으로 둘렀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초가지붕은 기와나 시멘트로 변했고, 이후에 남아있던 초가지붕은 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급하게 슬레이트나 천막으로 짚을 가린 것. 전통의 모습을 급하게 구조변경하려 했던 우리 현대사의 어설픈 '발전'논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장소다.

대구시 문화지도를 작성하다가 이 골목길에 아직 초가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리문화연대 사무국장 권상구씨는 "시내 한복판에 원형을 간직한 초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전국에서 이 지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한다.

거리문화연대는 초가골목의 초가집을 생활사 박물관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재개발로 우리 과거 생활사를 그대로 볼 수 있는 현장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초가의 원형을 살려서 시내와 아파트촌 귀퉁이에 생활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면 대구의 상징적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을 뿐더러 후세대의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권씨는 방치되고 재개발로 헐리게되는 초가집의 모습을 아쉬워한다.

이에 대해 중구청 장재업 문화공보실장은 "생활사 박물관이 의미는 있지만 사실상 구 차원에서 직접 추진할 여력은 안된다"고 밝혔다.

거리문화연대에서는 '로컬 트러스트(local trust) '운동을 펼쳐보는 것도 초가집을 지킬 수 있는 한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운동으로, 지역의 문화 관련 시설을 시민들이 돈을 내서 이를 지켜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들의 여론이 모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어려웠던 시절의 정취를 간직한 초가집을 도시 한복판에 보존하느냐 개발에 묻혀 사라지게 하는가는 우리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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