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자전기일보', 'TV일보'

입력 2002-11-14 00:00:00

미국언론사에서 큰 획을 그은 죠셉 풀리처와 윌리엄 맨돌프 허스트는 경쟁관계였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상대 신문사 논설위원 등 진용을 몽땅 빼내와 같은 색깔의 신문을 발행했었다. 심지어 연재만화가도 데려와 오기전의 신문사에 근무할 당시와 같은 제목의 만화를 그리도록 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신문경쟁으로 알려진 풀리처와 허스트 간의 '신문전쟁'은 허스트의 도전으로 시작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신문을 발행해 그런대로 자리를 잡은 허스트가 1895년 9월 뉴욕에 진출, 풀리처에게 대립의 각(角)을 세운것이다.

허스트는 당시 하는 방식대로기존의 신문 '뉴욕저널'을 인수해 풀리처의 '뉴욕월드' 영역을 잠식해 들어갔다. 당시 뉴욕에는 이미 8개사의 조간신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풀리처가 발행하는 '뉴욕월드'는 부수가 25만부로 최고였다. 이를 따라 잡을려면 보통의 방법을 버리는 게 예나 지금이나 정해진 코스다.

허스트는 '뉴욕저널' 인수와 함께 구독료를 절반으로 낮췄다. 임금은 2배이상으로 주기로 하고 풀리처쪽의 언론인들을 빼냈다. 두달만에 뉴욕저널의 발행부수는 3만부에서 10만부로 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신문값을 내리며 맞대응 할수밖에 없는게 풀리처의 조치다.우리가 유의할 대목은 두사람의 경쟁이 역기능 보다는 순기능 쪽에 무게가 실렸다는 점이다. 신문을 종전과 다르게 제대로 만들었다.

두 신문의 경쟁산물로 선정보도가 판을 쳤다는 비난도 있지만 미국신문의 질 향상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목이 명확해졌고 기사도 더욱 정확해졌다. 정치인들의 부패상을 고발하고 대기업의 횡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신문의 으뜸 목표인 '보통사람들의 대변자'로 거듭나허스트와 풀리처의 '신문 전쟁'이 결코 소모적인 경쟁이 아니었다.

한국 언론, 한국 신문계가 때아닌 소모적인 '신문 전쟁'으로 날이 지샌다. 소위 빅3라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주도하는 이 전쟁은 무가지(無價紙)살포, 경품공세로 이어지는 신문판매 전쟁이다.

신문 1부를 보면 자전거를 주거나 비데도 제공한다고 한다. 대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봉덕동 일대 아파트단지에서 자전거 제공을 걸고 신문을 확장하는 모습은 한동안 흔히 볼수있는 일로 돼 있었다.

사실 전국의 신문중 상당수가 이런 비판에서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같은 무분별한 부수확장 공세는 대형 신문사들이 촉발한 것으로 봐야하고 지금은 TV까지 경품으로 등장했다니 소위 '자전거일보', '비데일보', 'TV일보'경쟁은 끝간데를 모를 지경이다.

한국신문의 신문판매전쟁은 부수경쟁과 증면경쟁의 동시진행이다. 서울에서 발행하고 있는 신문의 경우 하루 64면을 내는 신문이 상당수다.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지면 신문의 면(面)도 늘어가는 것이 세계 신문들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 경우는 지면(紙面) 낭비측면이 강하다.

이들 신문의 광고게재율이 지면의 50~60%로 기사게재보다 앞선다. 광고지인지 신문지인지 분간이 어렵다는 독자들의 비판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한국 신문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조.중.동'의 독과점 체제 구축에도 있다.

이들 세 신문이 전국 신문시장 7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신문사들이 무차별적인 무가지 살포에 이어 거대한 자본력에 의한 경품의 '융단폭격'은 횡포수준을 넘어선 감이 든다.문제는 또 있다.

신문의 독과점 체제는 국민들에게 사고(思考)의 획일화를 부를 수 있다. 소위 빅3 신문의 시장과대 점유는 여론의 독점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편향사고로 인한 폐해가 걱정스럽다.

발전하는 사회는 다양한 사고(思考)가 전제돼야 한다. 여러 형태의 여론이 여과돼 지도적 여론으로 모아져야 사회는 정상적으로 굴러 간다. 이들 신문들이 일방적인 여론몰이에 나서면 균형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네모꼴로 내몰면 네모꼴로 가야하고 울퉁불퉁하게 그리면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내몰리게 되는 꼭두각시도 감내해야 한다면 우리의 사유(思惟)의 가치는어디서 찾나. 혼탁한 신문시장 질서가 결국 생각의 자유도 위협할 상황이 발생하는 '한국적인 신문 병폐'에 대한 우려도 있다. 만약에 언론자유도 유린할 요인이 있다면, 그게 더욱 전율할 일이다.

최종진(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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