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새로운 선거제도

입력 2002-11-13 15:29:00

선거제도가 다르면 선거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는 1대1의 경쟁에서는 다른 모든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콩도르세 승자'(Condorcet Winner)였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현행 헌법하의 득표수가 가장 많은 후보가 당선되는 최다득표제에 의해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로 집권할 수 있었다. 만일 결선투표제가 있었더라면, 야권단일화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때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어 한국정치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어 있다면,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현상도 지금과 같이 극도로 어지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간의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혼돈 양상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한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하여 민주당을 탈당한 국회의원 일부가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노 후보와 정 후보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에 맞서 무차별 영입에 의한 세불리기를 시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선투표제의 문제점으로는 결선투표를 추가로 실시함으로써 선거비용이 늘어나고 후보자 및 정당의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파간 제휴와 이합집산의 와중에 표류하고 있는 국정을 감안할 때 결선투표의 비용은 상대적으로 보아 작다고 할 수 있으며, 정히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일종의 탈락이양식 투표방식(alternative vote)을 사용하여 한 번의 투표로 결선투표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편, 정당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소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현상으로 볼 여지도 있으며, 최다득표제하에서 후보단일화 혹은 상대세력의 분열을 도모하기 위한 탈당 및 창당으로 야기될 수 있는 정당구도 자체의 불안정에 비하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선투표제하에서는 기존의 정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권자의 1차투표에 의해 사실상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당구도의 안정성을 그만큼 더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대선 판도의 혼란도 문제지만 대선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관계없이 정당구도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대선 후가 더욱 문제이다.

대선 후 우리 국민은 또 한번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목도해야 할 운명인 것이다. 최다득표제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수 지지에 의한 당선 가능성을 제거하여 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의 일반적 논리 외에도, 이와 같이 정당구도의 안정성의 측면에서도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웬 때아닌 개헌론인가? 하고 의아해 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여기저기서 제기되던 정치권의 각종 개헌론이 이제는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보면 정치권의 개헌에 관한 논쟁은 대개는 당리당략 및 정권유지 내지는 강화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의원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 후보로 내밀만한 강력한 후보가 없는 세력에 의해 제기되었다. 민주당 일각에서 최근까지 제기한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도 정치권의 합종연횡을 위한 정략적 의도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의 정부형태의 선택 문제, 대통령제를 유지할 경우 임기와 재선 허용여부, 결선투표제 및 부통령제의 도입여부, 국무총리의 위상 문제 등 헌법 개정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필요한 일이다. 헌법 개정에 대한 검토는 선거법, 정당법, 지방자치법 등 광의의 헌법이라고 할 각종 법률에 대한 검토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법률의 개정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을 굳이 헌법을 바꿀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당구도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개헌을 통한 결선투표제 도입보다는 각종 정치관계법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새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정치권뿐만 아니라 민간 전문가, 그리고 관심 있는 시민들의 광범한 참여를 바탕으로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과 제도의 개선 방안에 대한 검토를 한다면, 최소한 임기 말에 또다시 정략적 개헌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정준표(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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