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네자릿수...'원'화 단위 바꾸자

입력 2002-11-12 00:00:00

'백만장자'(Millionaire)는 부자를 상징하는 말.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백만장자는 부자 명함도 못내민다. 화폐 단위가 헐값이기 때문이다. 1달러당 1천200원, 1천300원 사이를 오가는 한국 원화(貨)는 세계 중진국 이상 국가 가운데 몇 안되는 네자릿수 환율국가다. OECD 국가 중 환율의 네자릿수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이탈리아 뿐이다.

화폐 액면 단위를 절하해 '비싼 통화'로 만들자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화폐단위 절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의 1천원 혹은 100원을 1원으로 바꿔 돈 값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화폐 단위가 낮아져 고액권 발행 필요성도 없어진다.

디노미네이션은 과거 중남미.동구권 국가에서 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목적으로 시도된 바 있다.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열성인 곳은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 박승 총재는 최근 대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이대로 가다간 '조'(兆) 단위로도 부족해 '경'(京.조의 1만배) 단위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다.'경' 단위를 쓰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나"라며 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날 박 총재는 "적어도 '1달러=1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의견을내놓기도 했다.

1원 단위는 물론이고 10원 단위마저 실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맞게 화폐 단위를 조정해 화폐 경제의 편의성을 높이자는 것이 디노미네이션 옹호론자들의 논리다.

그러나 당위성은 있지만 실제로 디노미네이션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과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으며 효과도 의문시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려면 새 지폐와 주화를 찍어내야 하고, 컴퓨터 프로그램.회계 장부.전표 양식 등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

지난 62년 '화폐개혁'에 버금가는 일대 변혁이 단행되는데 이것이 우리 사회.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미지수라는 것. 정부.여당에서도 반대론이 압도적이다.

법 절차상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관련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물론 공청회 등을 통한 국민여론 수렴 과정도 필요하다.한국은행 측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박 총재는 "디노미네이션은 중장기로 검토해야 할 과제이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부가 이를 추진할 경우 한국은행 측이 그 심부름(준비작업)을 맡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이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와 루머가 끊이지 않자 한은 측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디노미네이션은 중장기 과제로 연구 검토중에 있으며 현재로서는 시행시기 등 아직 어떠한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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