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잃고 희망을 보았죠-김윤섭 할아버지

입력 2002-11-09 15:06:00

"1천만원이 모이면 장학금으로 내 놓겠다는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쁩니다".시각장애인 김윤섭(71·대구 범물동)씨가 지난달 17일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을 도울 장학금 1천만원을 '대구희망신협'에 기증했다. 자신에게 도움 준 주위의 정성이 고마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가 더 늙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하려고 장학금으로 내놓게 됐다는 것.

1957년 경북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25년 동안 교직에 있던 김씨에게 장애가 찾아온 것은 1985년. '망막 박리변성'이라는 병을 앓으면서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2년여 동안 효험 있다는 병원과 약을 찾아 전국을 헤맸지만 시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교사에서 시각장애인으로 바뀐 김씨는 아내와 함께 죽자며 몹쓸 약을 준비했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음이 확인됐다. 1987년 4월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시각장애인인 대구대 임안수 교수의 특강을 듣게 된 것이 계기였다. "시각장애인이 교수가 돼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대구대로 임 교수를 찾아 갔고 점자도서관 이경재(46) 교정사까지 만나면서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김씨는 이 교정사와 함께 '대구 맹인 자립촉진회'를 만들었다. 집안에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않던 시각장애인들을 찾아 가 재활의지를 북돋우기 시작한 것.

이어 1990년에는 450만원을 종자돈으로 '대구희망신협'을 만들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경제적 자활 토대까지 마련해 주자며 뜻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친 것. 10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이 신협은 이제 김씨의 자부심이 됐다. 시각장애인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는 것. "부실 신협들이 퇴출되고 있지만 대구희망신협의 자산은 날로 늘어갑니다".

체력적인 한계때문에 1천 시간을 봉사한 뒤 10년만에 그만 두긴 했지만, 1997년까지는 '대구 생명의 전화' 상담봉사도 했다. 교사 재직 때 얻었던 상담 자신감이 뒷받침됐다. 한 사람과의 상담을 위해 6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던 일도 있다고 했다.

자녀들로부터 봉양 받아가며 살아도 흉될 것 없을 고령이지만 김씨는 지금도 바쁘다. 요즘엔 일주일에 4번씩 시내 양로원들을 찾아다니며 노인들에게 안마를 해 주는 것이 큰 기쁨. 봉사할 여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그만 관심만 보여 줘도 흰지팡이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시각장애인)은 무척 행복해 할 것입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