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논밭에도 문화를

입력 2002-11-07 14:12:00

샌프란시스코의 서북 나파지역은 포도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전통의 포도재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포도주 생산과 전시 및 시음관광 등으로 단순한 농사를 넘어 100년의 역사를 담은 문화기반 농산업으로 개발해나가고 있다.

농사와 문화를 접목해 나가는 그들의 미의식이 여간 부럽지 않다. 할리우드 역시 꿩 먹고 알 먹는 식이다. 세계 영화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할리우드는 영화제작의 본산지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으나 도시 전체가 관광단지화 되어 있다. 이미 흥행에 성공한 작품의 촬영세트를 이벤트화한 곳이라든지 다양한 코스의 볼거리를 통해 세계각국의 관광객을 여지없이 불러들인다.

나파지역이나 할리우드, 이 둘은 각각 성격이 다른 사업분야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문화의식은 동일하다. 우리사회는 정보화사회를 넘어 이미 창조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사회의 중심원리는 문화다. 문화의식이 모든 것의 기반가치로 자리한다는 의미다. 농사일이든 공장일이든, 심지어 행정관리에 이르기까지 그 일을 문화와 접속할 수 있을 때 더 높은 부가가치의 산물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뜻이다.

가을걷이 들녘이 예년과 다름 없다. 거기엔 잘 익은 알곡 향과 흙 내음이 어울린 삽상한 바람결이 머문다. 천년 누대를 변함없이 이어온 벼논에선 야박하지 않은 농심이 배어난다. 그러나 그 이랑가로 사회변화를 비웃는 듯 무디고 냉담한 우리의 의식이 무심하게 따라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벼논에서 혹은 능금밭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기반 농업을 창출해 볼 수는 없을까. 외국에서는 고작 몇 백년 내려온 농작물을 가지고도 가지가지 기록으로, 상품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고 야단법석들인데….

진정 자원은 유한하지 않다. 오히려 그 접목해 내려는 생각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지역마다 여는 그 흔한 축제류의 일회성 행사로부터 한차원 격상될 수 있는 가치혁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보다 나은 우리모두의 삶을 위하여.

육군 3사관학교 행정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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