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대구.경북 신협의 원죄

입력 2002-11-06 15:19:00

부실신협 정리 과정에서 대구.경북지역 38곳이 무더기로 퇴출되는 등 지역신협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전체 퇴출 신협 115개의 33%나 되는 수치다. 자본이 완전잠식되고 자산대비 손실률이 -7%를 넘는 신협이 '살생부'에 올랐지만 경영평가 결과 대구.경북지역 신협이 이처럼 많이 포함되자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놀랐다고 한다.

대구.경북지역 신협이 이토록 많이 정리될 수밖에 없었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시장 규모에 걸맞지 않은 무분별한 난립이라는 '원죄'를 읽을 수 있다.한 집 건너면 청와대와 줄이 닿더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TK'가 득세하던 90년대 초반까지 지역에서는 신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돈놀이'와 '감투'에만 관심있던 동네 유지들의 로비에 의해 태어난 신협의 운명은 태생적으로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신협계는 이미 지난 99년 1차 구조조정 작업을 거친 바 있다. 당시 부실신협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작업이 시작됐지만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단됐다. 특히 "내 지역구의 신협은 문을 닫게 해서는 안된다"는 국회의원들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었다고 지역 신협계 한 인사는 술회했다.

그는 "그 때 신협에 대한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면 이번과 같은 홍역은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면서 "그 때 도려내지 못한 생채기가 결국다시 곪아 터졌다"고 개탄했다.

신협 조합원들은 금융감독원의 공언대로 이번이 마지막 대대적 구조조정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신협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가 크게 실추되면서우량신협들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신협인들이 적지 않다.

불행히도 정치권의 로비와 압력은 이번 퇴출신협 선정 과정에서도 되풀이됐다는 것이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같은 압력과 로비가 이번 구조조정에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 논리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한 신협이 만약 있다손 치더라도 결국 시장의 심판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뢰'와 '협동정신'이 없는 신협(信協)은 존재 당위성이 없다. 구조조정 태풍 속에서 살아남은 신협들은 서민금융 및 상호부조라는 신협 본연의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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