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전쟁과 바람

입력 2002-11-05 14:07:00

대구의 여름나기는 전쟁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용케 견디는 것은 순전히 한더위를 물릴 선선한 가을바람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영문인지 가을바람 꿈은 날아가고 벌써 겨울의 문 턱에 와있다. 어떻게 견딘 여름인데, 초가을에 불어닥친 겨울 바람 이 야속하기만 하다.

바람이란 게 본시 그런 거다. 때로는 우리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지만, 때로는 그것들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바람의 상징은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선하고 신성한 것을 상징하는가 하면, 악의 화신으로도 나타난다. 신약성서에서 바람을 뜻하는 헬라어의'프 뉴마'는 거룩한 영을 상징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풍백(風伯)이라는 이름 역시 바람을 신격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양인들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이나 떠돌이 바람은 악덕의 상징으로 본다.

수 조원의 재산손실과 인명피해를 냈던 '루사'같은 태풍도 악의 축에 속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자연바람을 두고 선악을 논한들 무슨 소 용이 있겠는가! 그저 자연 앞에 겸손하게 누릴 만큼 누리고, 막을 만큼 막을 도리밖에는 없다.

정작 악덕바람의 압권은 태풍이 아니다. 당리당략에다 정권야욕에 눈먼 우리네 정치판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다. 북풍, 세풍, 총풍, 병풍, 신북풍, 얼마 전에는 주풍까지 불고 있다.

태풍이야 예상경로도 있고, 쉬었다가 올라오고, 때가 되면 사라지는 법인데, 정치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도대체 예측불허에다 쉬지도,멈출 줄도 모른다. 여기에다 올 한해 우리 사회는 성형바람, 도박바람, 복권바람, 명품바람에 비틀거렸고, 대중문화계는 조폭바람까지불어닥쳐 그야말로 바람잘 날 없는 한해를 보내고 있다.

과연 '바람의 나라'가 아닌가! 양풍이 악풍을 구축하는 그 날을 위해 이번대통령 선거에는 바람 안일으킬 대통령을 찾아봄이 어떨까?

기독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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