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대구장애인부모회 김경락회장

입력 2002-11-04 14:24:00

대구장애인부모회 김경락(64) 회장은 평생을 장애인과 함께 한 사람이다. 33년동안 특수학교 교사로 몸담으며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가 목회의 꿈을 접고 특수교육에 뛰어든 것도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막내딸의 영향이 컸다.

지난 2000년 대구 보건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그는 요즘 각종 사회봉사활동으로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다. 지난 9월 국제 키와니스클럽 한국지구 총재로 취임하면서 장애청소년과 불우 노인들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뛰고 있는 그는 봉사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김 회장은 청년시절 신학을 전공했다. 전도사로 활동하다 학문을 보다 넓히려는 뜻에서 대구대에 진학한 것이 특수교육과의 인연이 맺어진 계기다. 1968년 청각장애인학교 '영화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그는 특수교육현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30년 넘게 시각장애인학교 '광명학교'와 지체장애인학교 '보건학교'를 오가며 장애아들을 가르쳤다. 대구시내 7개 특수학교 1천500여명의 장애학생들을 위한 그의 노력은 학교 밖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 부모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장애아들의 권익을 위한 장애인부모 모임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대구장애인부모회. 결성된지 벌써 10년이 넘은 이 모임은 장애인 부모들이 같이 모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장애인을 위한 각종 상담과 취업알선, 정책건의 등을 통한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임이다. 현재 300여명의 회원들이 뜻을 같이해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의 무관심과 장애인에 대한 정책미비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고통과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집안에 장애를 가진 자식이 있으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요". 그는 그런 부모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노력해 봉사하는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우리사회도 더욱 밝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재작년 정년퇴직 후 그는 영천 신녕면에 작은 농장을 마련해 농사를 시작했다. 마늘과 참깨, 콩 등을 키워 봉사활동에 보탬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농사가 예순이 넘은 김 회장에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애를 쓰고 있으나 소출은 많지 않다. 그러나 남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김 회장의 마지막 꿈은 봉사다.

그가 한국지구 총재를 맡아 활동하고 있는 국제키와니스클럽은 장애청소년, 사회빈곤층 및 불우노인을 지원하고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단체. 1967년 한국지부 창립으로 발족된 이 단체는 지난 88년 대구에 첫 클럽이 결성되면서 활동이 본격화됐다.

당시 이태영 대구대총장 등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발족했지만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모임이다. 올해 총재직을 승계한 그는 지난달부터 전국 43개 클럽을 순방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를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의 이같은 사회봉사활동은 아들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맏아들과 특수학교 교사인 둘째 아들도 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그는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이야말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고 말한다. 하루 걸러 전국 각 지역을 오가는 바쁜 생활이지만 그는 전혀 피곤한 기색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키와니스클럽을 한 차원 높은 사회봉사단체로 성장시킬 생각입니다. 회원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는 내실있는 봉사프로그램으로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클럽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을 열정으로 가득찬 삶으로 이끌어가는 힘은 바로 남을 위한 봉사의 정신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타인을 위해 앞만 보며 나아가는 그의 삶은 물질이 앞서는 요즘 세태에 진정한 명예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해준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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