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어머니의 도시락

입력 2002-11-02 14:17:00

출근길의 내 모습은, 마주치는 동료들이 "김 선생, 어디 소풍이라도 갑니까?"하고 인사를 할 정도로 양 손 가득 짐을 싸들고 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싸 주시는 도시락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미스(Miss)임으로 누리는 특혜(?) 중 하나이다.

개나리색 아이스박스와 연두색 도시락에는 각종 영양식이 꽉 들어차 있다. 보온 도시락에는 아직도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된장국과 탐스러운 밤 두 알이 들어 있는 잡곡밥, 그리고 불길에서 갓 꺼낸 듯한 반찬들이 들어 있고, 그 보온 도시락은 다시 두세 겹의 예쁜 수건들로 싸여 있다.

다른 반찬통은 마치 소꿉놀이 장난감같은 색색깔의 작은 뚜껑들로 장식돼 있다. 주황, 파랑, 노랑 그리고 녹색의 뚜껑들을 하나하나 열면 거기에는 맛깔스런 음식들이 가지런하게 늘어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박스 한켠에는 아버지가 솎아내신 어린 상추와 고추, 풋내에서 방금 벗어난 방울 토마토가 들어 있다. 방울토마토를 한 입 깨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그 신선함은 피곤한 내 몸을 깨우는 마법이 되기도 한다.

아이스박스 다른 켠에는 음료수와 계절별 과일과 함께 다양한 간식거리도 있다. 나와 한번이라도 함께 도시락을 나눈 이들은 이 푸짐한 향연에 놀란다. 다양한 메뉴뿐 아니라 매번 이런 도시락을 챙겨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 함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성악을 시작하면서 고교 3년동안에도 일년 사계절 보온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의 도시락을 다시 들고 다닌다. 때로는 그 수고와 번거로움에 죄송스러워 하지만 도시락 싸시는 일이 당신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라 하신다. 이런 어머니의 정성과 기도가 오늘도 강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며,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잘 안다.

오늘도 어머니의 도시락을 열며 속삭인다.

'어머니, 늘 사랑합니다!'

성악가·계명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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