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반군에 의한 대규모 인질사태와 러시아 특공대의 유혈진압은 러시아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TV를 통해 중계되는 현장상황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현장의 참혹함에 놀라고 그 후의 상황전개에서 미국의 9.11 테러가 국제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 가를 실감하면서 또 한번 놀랐다.
특공대가 살포한 독가스는 50명의 인질범뿐만 아니라 적어도 117명의 무고한 인질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치적 입지는 사태 발발전보다 오히려 강화되는 분위기이다.
카네기 모스코우 센터의 릴라 쉐브트소바 연구원은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의 결정이더 큰 희생을 막았기 때문에 지지하는 분위기이며 지금 푸틴은 승리자의 위치에 있다. 많은 러시아 국민의 눈에 그는 승리자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선 희생자 숫자가 모스크바 시민들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을 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가스를 살포해 167명이 목숨을 잃은 상황은 어느 나라에서나 심각한 정치적 반작용을 불러올만큼 엄청난 비극이지만 모스크바 TV방송들은 이번 작전을 푸틴의 승리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은 주요 TV방송을 러시아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실제로 사건 직후 모스크바 주요 TV체널은 인질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구출돼 "특공대가 진입하지 않았더라면 인질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외치는 인테르팍스 통신 저널리스트 올가 체르냐크의 말을 대대적으로 방영했다.
사실 인질극이 발발한 이후 처음 3일간은 러시아에서는 체첸 반군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강경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체첸 분리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탄압을 처음 시작한 사람도 푸틴 대통령이었으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그의 대 체첸 강경정책에 대한 국민지지가 바탕이 됐다.
그는 총리시절이던 지난 1999년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 시내 아파트에 대한 폭탄 테러로 3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데 대한 보복으로체첸에 군 투입을 결정, 제2차 체첸전쟁을 시작한 장본이다.
당시 체첸 침공은 러시아군의 가혹행위로 인해 러시아와 국제사회의 인권옹호단체들 사이에 끊임없이 비판을 야기했다. 그러나 이번 인질사건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일어난 사건인 때문인지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또다른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이같은 분위기의 반전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사회에도 반테러 논리가 팽배하고 있고 푸틴 정부가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더욱이 과거 소련사회에서 중요한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서던 미국이 이번 사태에서 푸틴의 결정을 옹호하고 나선 것도 푸틴의 승리를 뒷받침하는 또하나의 요인이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직후 체첸 반군을 국제적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28일에는 '테러와의 전면전'을 선언하고체첸반군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격에 나섰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신에 인질범들을 비난했으며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은 비극의 원인은 테러리스트이며 사태의 책임이 테러리스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리차드 바우처 국무성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테라리스트들이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항에서 러시아도 달리 뾰족한 방책이 없었을 것"이라고 러시아의 입장을 변호했다.
미국의 이같은 입장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고려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일각에서는 모스크바와 워싱턴 사이에 미국이 이번 사태를 묵인하는 대신 러시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묵인하는 막후 흥정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서 러시아 정부가 보다 신중한 해결책을 썼더라면 희생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쉐브트소바 연구원도 "푸틴이 반군과 협상을 했더라면 희생은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의 하나다.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범죄학 전문가 하비 쿠시너 교수는 이번 사건을 러시아판 와코사건이라고 표현했다. 1993년 미국 택사스주 외코에서 브랜치 데이비드를 추종하는 유사종교 신도 8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연방정부가 51일간의 대치상황을 종결짓기 위해 탱크로 건물에 구멍을 뚫고 독가스를 불어넣은 것이다. 쿠시너 교수는 "두 사건 모두에서 당국은 대화와 협상을 계속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미국 랜드 연구소의 테러리즘 전문가 브라이언 젠킨스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인질극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무색, 무취의 비독성 가스를 연구해 왔다.
그러나 사람마다 체중과 연령, 신체조건에 따라 받아들이는 충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라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스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며 "러시아군이 반군들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고의로 강력한 독가스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여칠회기자 chilho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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