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체첸과 티베트

입력 2002-10-30 00:00:00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대구가 낳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앞 부분이다.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는 국권상실의 울분과 회복에의 염원을 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시인이 느끼는 현실적 절망감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를 전해주고 있다.

▲일제(日帝)의 한반도 병합이 보여주듯, 시대를 막론하고 힘없는 나라들은 고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국제사회의 광폭(狂暴)한 힘의 논리 때문이다. 강대국 내 소수민족 또한 약자의 비애를 고스란히 맛보게 된다.

그들이 가진 풍부한 자원은 오히려 재앙이다. 자원을 지킬 힘이 없어 강대국의 침탈을 부르고, 분리 독립의 의지마저 무참히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요즘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체첸공화국이 그런 나라들 중 하나다.

▲체첸은 인구 100만, 그것도 최근 전쟁으로 80만으로 줄어든 경상북도 크기의 미니공화국이다. 17세기 이후 페르시아, 오토만, 러시아에 차례로 지배당했고, 2차 대전 때 독일군을 돕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 당한 경험이 있다.

91년말 소련 해체 때 분리독립 선언을 한 것을 시발로 러시아와 20여년 간 갈등을 빚고 있다. 그들의 독립투쟁은 테러로 집중됐고, 그것이 두 차례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수민족 문제가 어디 러시아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미국의 인디언이나 호주의 마오리족, 중국의 티베트족이 다 닮은꼴이다. 특히 티베트는 체첸과 100% 닮아 있다. 러시아나 중국은 소수민족들을 독립시켜줄 경우 국가가 와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인구 2천만 이상을, 중국은 영토의 절반과 인접 5개국과의 국경선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원유와 우라늄 등의 천연자원과 송유관 같은 경제시설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점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분리독립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는 이유다.

▲국제사회는 러시아나 중국의 소수민족 처리방식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자결권'이라는 인류의 정치적 진보를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처럼 한족(漢族)들을 이주시켜 티베트를 식민지화하려는 의도는 반문명적(反文明的)이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주정책의 결과, 티베트의 인구분포가 티베트인 600만에 한족750만으로 역전됐다고 주장한다. 인해전술(人海戰術)을 연상시키는 소수민족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나라를 빼앗겨본 우리로서는 체첸이나 티베트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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