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잘놓는 돌팔이

입력 2002-10-29 14:30:00

예전부터 이웃 중에는 체했을 때 잘 따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비를 베풀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용하다고 소문 내면서 함부로 침을 놓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이 마치 전문가인양 일반인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침 잘 놓는 돌팔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간염은 물론 간암까지 침으로 치료한다는 소문이 난 뒤 불법 의료행위 혐의로 고발됐다. 벌금을 물고 난 뒤에도 환자들이 계속 몰리자 그 할아버지는 결국 도망을 갔다. 치료 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히려 악화되거나 생명을 잃는 사람도 생겼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는 모든 환자들에게 똑같은 곳에 침을 놓았다. 이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독혈요법(獨穴療法), 즉 한 혈자리만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 분이 사용했던 혈은 아마 양릉천(陽陵泉)이었을 것이다.

이 혈자리는 간장이나 비장종대로 인한 통증을 비롯해 간염.담낭염, 그리고 각종 근육경련 등에 효과가 있다.

물론 간염이나 간암 환자 중에 이 혈자리에 침을 맞고 증세가 호전되거나 통증이 가라앉아 효과를 얻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기거나 증세가 악화된 환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 할아버지는 용한 것으로 소문 났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료가 잘되면 이를 온 동네에 소문을 내지만 치료가 잘 안되면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거나 의사와 운대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소문을 내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 할아버지는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 때문에 스스로도 용하다는 생각에 빠지고 심지어 간염과 간암을 완치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돌팔이가 됐다가 치료 되지 않은 사람들의 고발까지 당하자 도망가 버렸다.

한의학에 의하면 음양은 항상 같이 있고 혈자리에도 음양의 짝이 있다. 양릉천의 짝은 음릉천(陰陵泉)이다. 이 혈자리는 음증(陰證)에 이용되고 양릉천은 양증(陽證)에 이용된다. 음증과 양증도 가리지도 않고 간염이나 간암 환자의 양릉천에 대놓고 침을 놓게 되면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침구학은 복잡한 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근 침과 관련해 문제가 일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과 정당에 "침구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치적 로비를 벌이는 사람들 때문이다. 지금 전국에는 1만명 이상의 전문 한의사가 있고 해마다 800여명의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충분히 배출되고 있는데도 어깨 너머로 배운 한 두 가지 침술로 생명을 다루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경산대 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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