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 필자는 아직도 당황한다. 왜냐하면 고향이란 반드시 태어난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왔고, 또다시 한국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을 거쳐 서울로 되돌아 왔다.
이후 짧지 않은 유학생활을 한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대한 추억은 많으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동화감은 없었다. 따라서 필자에게는 그 모두가 타향살이인 셈이다.
귀국 직후 시작한 대구에서의 생활, 그 대부분이 교수로서의 생활이다. 대구에 정착한 지도 벌써 14년째가 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던 초반에는 거칠게 들리는 경상도 억양과 무뚝뚝함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게다가 사람이 모여 사는 어디에나 있다는 지연, 학연, 혈연 등 인맥의 벽은 왜 그렇게 높게만 느껴지던지. 서문시장에서는 물건 값 흥정에 자신이 없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용무 외 차근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무덥고 매섭게 추운 극단적인 기후에다가 음식은 왜 그렇게 짜고 매운지. 필자의 마음은 한동안 방황하고 있었다.
독일 남동부의 '낭만 가도'와 오스트리아 티롤지역의 알프스 산자락 길 못지 않게 대구 근교의 풍경은 정말 빼어나다. 팔공산 순환도로, 헐티재를 넘어 운문댐을 굽이도는 청도 국도, 성주에서 해인사 가는 길 등이 그러하다. 다만 난개발과 난립이 눈에 거슬린다.
그 가도를 특징짓는 유적과 관광명소를 자연과의 조화속에 가꾸어 나가면 좋겠다. 고령 딸기, 청도 복숭아와 감, 영천 포도, 성주 참외와 수박 등 계절에 따른 맛있는 과일을 갖고 서울에 갈 때면,선친께서 "'대구댁'이 바리바리 싸들고 왔구나" 하시며 반겨 주셨다. 그러면 어설픈 경상도 억양으로 필자는 대구 자랑에 더욱 신이 나곤 했었다.
이제 텃세를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대구 울타리에 들어가 인정을 나누고 있으며, 경상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리고, 의성 마늘과 영양 고추가 우수함도 알며, 매운 따로 국밥 한 그릇을 너끈히 비울 수 있음으로 판단하건대, 어느덧 진정한'대구댁'이 되어가는가보다. 대구가 실질적인 고향이라 대답할 수 있다.
권언수 계명대 교수·오르가니스트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