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 모시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 뭔 대수이겠습니까?"
가누기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도 중풍 걸린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장애인 이준복(43) 석영미(38·대구시 산격동)씨 부부. 극한 상황에서도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가 까딱 삭막해지기 쉬운 이웃들의 가슴에 채찍이 되고 있다.
이씨는 21세 때 뇌졸중을 앓아 오른쪽 반신이 마비됐다. 3년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지냈다. 꾸준한 재활치료 덕분에 이젠 걸을 수 있지만 반신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겨우 리어카 행상 정도. 그 몸에는 그마저 중노동이었지만 할인점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하루 벌이가 2만원이 안될 때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상황은 다행스런 것이었다. 4년 전 '신부전증'이라는 무서운 시련을 또 만나야 했던 것. 하루 걸러 한번씩 병원에 가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게 됐다. 이런 이씨에게 신부전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행상을 할 수 없게 된 현실이라고 했다. 아내도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아내와는 1983년에 만나 결혼했다고 했다. 창녕으로 약용 물질을 구하러 갔던 것이 인연. 부인 석씨도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때 창녕으로 갔던 이씨는 물질로 된 약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약을 얻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내를 만난 건 제 인생에 가장 큰 행운입니다". 이씨는 불편한 몸으로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식사 수발까지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는 아내가 한없이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을 고마워했다. "어려운 살림인데도 가장의 위치를 꿋꿋이 지키는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은 나의 행복"이라고 했다.
부부는 12평 짜리 좁은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금 수입이라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주는 월 60만원이 전부. 매달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고교생 아들 학비, 생활비로 쓰는데도 모자랄 액수이다.
하지만 이웃 김창시(50)씨는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이들 부부"라고 말했다.
"조그만 가게라도 내게 되고 어머니와 아들을 위해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살 겁니다". 지금 이씨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도 보약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지어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