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하나됨의 환상

입력 2002-10-10 14:08:00

지금 부산에선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다. 아시아 각국에서 몰려든 선수들은 제가끔 자기 종목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번에는 북한 선수들도 대거 참여하여 오래간만에 국제무대에서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북한 선수가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남 북한 선수가 같은 종목에서 선전하는 경우 응원단이 서로를 응원해주면서 열광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응원현장에서는 남 북한이 구별 없이 하나 됨을응원소리에서 박수에서 몸소 체험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유독 끄는 것은 만경봉호를 타고 온 '북한 미인 응원단'이다. 중앙언론에서는 대단한 눈요기 감이나 되는 듯이 난리법석이다. 북한선수가 운동을 하는 곳마다 30, 50명씩 짝을 지어 몰려다니는 이들을 두고 자연미를 과시한다고, 성형수술한 남한 여자들보다도 미인이라고 호들갑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들이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머리 모양새나 옷 매무새가 천편일률적인 탓인지, 혹은 그들이리더의 지시에 따라 너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탓인지, 아니면 갖다댄 마이크에 앵무새처럼 똑같은 톤으로 똑같은 소리를 읊조리는 탓인지 개개인이 구별 없이 하나로 다가온다.

이런 하나 됨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낯설고 기이하다. 그들의 얼굴은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 상태일지 몰라도 그들이 응원현장에서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다. 마치 자동 조작되는 북한판 바비 인형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들 자신이 오히려 구경거리가 되고, 실제로 이들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모습은 어디에서 본 것만 같다. 그렇다! 자발적인 것 같으면서도 상도를 벗어나는 그들의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에서 똑같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열정의 도가니에 빠졌던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

길거리 응원에서 보였던 우리의 하나 됨의 모습은 적어도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외부인의 눈에는 낯설고 작위적이었을 것이다. 국가가 나서지 않았다 뿐이지 전체주의적인 동원문화의 한 단면인 점에서는 북한과 차이가 없다. 언론과 기업광고의 분위기 띄우기에 휘둘린 탓으로 자발적인 것처럼 헛보인 것이다. 그래서 구경거리인 것이고 외신의 흥미를 유발했을 뿐이다.

경북대 교수·사회학 노진철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