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의 그림자-(중)복권.경품 열병

입력 2002-10-09 14:35:00

'나도 언젠가 한방 터뜨리고 싶다'는 투기심리가 소시민들을 복권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대박에 대한 환상이 이상 과열되면서 복권발행처끼리 최고 당첨금 경쟁이 불붙었나하면, 쇼핑업체나 카드회사들의 과다한 경품경쟁이 쇼핑 중독증과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개인파산과 같은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8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있는 한 복권판매점. '최고의 확률! 당신의 운명안에 있다'는 선동적 문구가 복권사기를 부추기는 가운데 젊은 사람 서너명이 복권을 긁고 있다. 그 중 한명은 "퇴근 뒤 10여장씩 긁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며 "수십억원 당첨금의 환상에 사로잡혀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가 복권방의 주말 평균 이용객은 하루 평균 200~300명. 한 복권방 주인은 "재미로 한두장씩 사기보다는 대박을 노리고 열댓장씩 한꺼번에 구입하는 유형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첨금을 노리는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하는 아내와 늘 다툰다"는 한 직장인은 아내 몰래 카드로 돈을 빌려 복권을 사는데도 멈출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국민은행 대구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복권 판매량은 올들어 9월말까지 추첨식 복권 1천677만2천867장, 다첨식 복권 353만3천305장, 즉석식 복권 88만5천426장 등 총 2천119만1천598장(101억5천300만원)이 팔렸다.

이처럼 한탕을 노리는 복권판매가 급증하면서 대구시내에 100여곳의 복권방이 성업중이며, 복권자동판매기가 주택가 골목까지 점령하고 있다. 연말쯤 7개 정부기관이 연합해서 당첨금이 무제한인 온라인복권을 발행할 경우, 당첨을 노리는 소시민들의 복권열병은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컴퓨터를 다루는 젊은층은 인터넷복권을 긁는 데 열중이며 복권공동구매 사이트도 수십개씩 생겨나고 있다.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한 계모임처럼 회비를 거둬 복권을 공동구매하는 동호회원도 날로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복권열풍의 원인은 정상적인 근로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풍조에다가 정부기관의 무분별한 복권발행과 최고 당첨금 경쟁 때문이다. 최고 당첨금이 많을수록 선호도도 커지는 이상증상을 보이는데, 현재 최고 당첨금은 40억원에 이르고 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건설교통부 등 10개 정부기관이 기금조성을 위해 복권 23종을 발행, 수익금은 지난해 1천834억원으로 전년도 1천678억원에 비해 9.3% 증가했다.

복권 열기와 함께 일단 쓰고 보자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신용카드 연체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7.38%이던 은행신용카드 연체율은 올 7월 10.12%로 10%를 넘어선 후 8월 11.08%, 9월 11.19%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경품열병과 홈쇼핑 중독도 도를 넘고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인터넷사이트에서 하루 종일 경품응모에만 매달리는 '경품족'들이 상당수이고 한국소비자보호원의 분석에 따르면 홈쇼핑 이용자의 4%가 중독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에도 대구의 한 생활정보지를 비롯 유명백화점 등이 고가의 아파트를 경품으로 내거는 등 업체에서 사행심을 부추겨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이런 행사때마다 수십만명이 매달릴 정도로 전국민이 경품열병에 휩싸였다.

대학생 이모씨(28.대구시 달서구 장기동)는 "재미로 인터넷 경품응모에 참여했는데 김치냉장고나 고가의 건강식품 등을 받고부터는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 경품응모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홈쇼핑업체들은 경품을 내걸지않으면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공짜대박을 바라는 심리가 만연되면서 전체 홈쇼핑 판매품목의 47%가 경품을 제공하고 있다. 경품가격도 구매상품과 같거나 높은 경우가 55%나 돼 소비자들의 홈쇼핑 중독과 경품중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복권발행기관마다 2, 3종의 복권을 발행하고 고액 당첨금경쟁이 가열되면서 사행심이 조장된 것이 사실"이라며 "최고당첨금을 조정하는 한편 복권의 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서 국민들의 사행심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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