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창간 10주년사(辭)

입력 2002-10-05 14:07:00

10년 전, 1992년 가을 그들은 이렇게 썼다. "'시와 반시'의 출발은 작고 소박한 희망에서 비롯된다. 서울이 아닌 이 지역에도 제대로 된 시 전문 잡지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작고 소박한, 그러나 분명한 우리들의 희망 속에는 적지 않은 갈증과 허기의 시간들이 퇴적되어 있다.… 자신이 발 디딘 땅이 삶의 중심이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의 한가운데임을 확신하는 자존과 오만이 참된 시인의 요건일 때,… 고정된 관념들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차갑고 싸늘하게 밀어낼 것이다. 꿈꾸는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은 영혼의 군살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시의 최고의 전통이 어디로 이어져야 할지를 엄정한 눈으로 살필 것이다.… 척박한 땅에 씨 뿌리는 이 순간의 오기와 고독이 풍화되는 그 날을 기다리겠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2002년 가을 그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무엇이 바뀌고 달라졌는가. 이 땅은 그 척박함을 더하고 우리의 오기와 고독은 더 높이 그 갈기를 곧추세워야 했을 뿐,… 그러므로 10년 전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날의 다짐은 아직도 절실하다! … 다시 다가올 10년을 생각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 안주와 태만, 혹은 유혹과 질시, 혹은 하등의 가짜와 하등의 몰가치, 그들과의 전투에 결연하겠다.… 우리는 지금 지적 혼미와 물적 궁핍, 사회근간의 구조적 뒤틀림으로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너도 나도, 문학도 잡지도, 뒤틀린 세상살이도 초심에 서서보면 앞길이 보이리라.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문화란, 문화의 집적이란 신데렐라 설화가 아니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고통과 허기와 오기, 그리고 땀이 만들어내는 고귀한 열매인 것이다. 날로 심화되는 지역 문화 소외의 현실에서 한 호의 결호 없이 잡지의 위의를 지킨 적공(積功) 10년이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아울러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들의 새 10년의 결의에 신뢰와 기대를 보낸다.

김영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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