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병풍계산서

입력 2002-10-03 00:00:00

김대업씨가 다시 일으킨 이번 병풍(兵風)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우리의 정치'가 아직 이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한심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가 사기전과자라고 해서 옳은 말을 하지말라는 법도 없고 그의 언행을 무조건 백안시해서도 안된다. 교도소 생활을 오래한 전과자일수록 교정행정의 비리나 모순 등은 몸으로 느끼고 봐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출소한 후 그걸 폭로하면 으레껏 교정당국자는 물론 국민들도 전과자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 무시하기 일쑤인 게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병풍이 5년만에 다시 일어났지만 일부 국민들사이에선 "또 그걸 우려먹어?" 하는 반응을 일으킨 게 사실이다. 그건 우선 김대업씨가 바로 병무비리의 전과자였다는 게 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권에서 더 극성스럽게 치고나온 게 더욱 '국민신뢰'를 잃은 요인이 된 것 같다. 왜 정치권이 거들면 국민들이 믿질 않는지 그 근원을 여.야 정치인들은 정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 현상은 특히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됐는데 아마 그건 '말바꾸기'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업씨를 특보로 임명해 병풍공세를 취해온 민주당의 얘기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병풍사건은 결국 일부 국민들이 미심쩍어한 대로 김대업씨의 조작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검찰수사는 곧 종결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곧 결딴날 일처럼 큰소리 쳐온 민주당의 입장이 그야말로 '닭쫓던 개' 신세로 말이 아니게 됐다. 만약 이번 사건으로 김대업씨가 명예훼손혐의로 사법처리가 된다면 그 다음 타깃은 자연 그를 끼고 돌았던 민주당쪽이 될 수밖에 없고 이른바 '김대업 커넥션'에 관한 문제는 그 동기를 캐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순(手順)으로 짜여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이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심하는 듯한 분위기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박영관 특수1부장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구설수에 올라 그의 처신도 편치않을 듯하고 김대업씨의 병풍제기 동기나 배후문제까지 벌써 언론에서 제기하는 마당이니 그 모든 걸 피해갈 '묘수'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칫 잘못하면 검찰이 정치권이 덮어쓸 지분(持分)까지 몽땅 짊어질 수도 있지 않을지 검찰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명재 검찰'이 출범하고 난 뒤 어느 정도 회복된 명예가 더 이상 실추되지 않게 검찰은 더욱 냉철하고 현명해져야 할 국면에 처해 있다. 그래야만 '병풍 계산서'가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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