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후 옮겼다?

입력 2002-09-28 12:19:00

"어렵게 발견했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실종된 개구리소년들이 모두 유골로 발견될 당시 경찰은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로 추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타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타살 미스테리'의 첫발은 27일 상의가 뒤집어진채 소매 부위가 뒤로 두번 묶여 있고 하의도 무릎 윗부분이 묶여져 있는 운동복 한벌이 나오면서 부터다.

경찰과 감식팀은 다른 사람이 묶을 수 있지만 자신이 묶을 수도 있어 타살을 뒷받침하는 정황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팔을 빼내 소매 부위를 등뒤로 돌려 묶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지를 벗어 무릎 윗부분을 묶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것.

한 유족은 "경찰이 정확한 사건규명을 위해 수사력을 쏟아부어야할 판에 갖가지 의혹들이 나오고 있지만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회피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을 최초 발견한 최환태(55)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얇은 돌을 들춰 내자 신발 끝부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고 진술한 것도 타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 추정대로 아이들이 추위를 피해 서로 얼싸안고 있었다면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을 이유가 없어 누군가 아이들을 생매장했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유골이 발견된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4부 능선과 수백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당시 자연 부락이 있어 민가 몇채가 있었다는 인근 주민들의 진술도 타살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주민들은 "유골발견 현장은 자연 부락 형태의 서촌 마을과 인접해 아이들이 민가의 불빛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추위를 피해 그곳에 모여 죽음을 맞이했다는 경찰측의 추정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27일 현장감식도중 발견된 탄두와 탄환이 유품 및 유골과 불과 10~20cm가량 거리에 있었다는 점도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경찰은 당시 현장으로부터 서남쪽 방향 250m 떨어진 곳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 그곳에서 날라온 탄두이거나 아이들이총알을 주워 소지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능선 반대쪽의 사격장에서 총알이 산을 넘어 현장으로 날라올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98년 7월부터 3개월동안 달서구청은 유골현장 일대에서 수백명의 공공근로자를 동원, 가지치기 사업을 벌이고도 유골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들이 깊은 곳에 매장당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 유골현장엔 가지치기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당시 담당 공무원도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골현장 부근에서 가지치기 사업을 벌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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