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귀향에 거는 기대

입력 2002-09-19 14:21:00

이번 추석연휴는 주말이 겹친 3일로 예년보다 짧아 귀향을 아예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업체가 연휴기간을 3일간으로 잡고 있어서 고향에 내려가자마자 되돌아와야 하는 부담이 있고, 예상되는 귀향길의 극심한 교통정체가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대이동이 전개되고 있다.추석은 역시 귀향이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의 수려한 풍광이나 감미로운 가을바람, 가을햇살 같은 낭만과 풍류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 내 고향 내 가족을 찾게 마련이다. 어디엔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냉혹한 경쟁에 시달리는 도회인들에게 분명히 넓고 깊은 위안이 된다.

고향은 언제나 그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를 맞으면서도 구태여 그 대가를 기다리지 않기에, 잠시나마 각박한 도시의 삶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 등 명절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귀향하면 어르들뿐 아니라 친구들도 꼭 찾아서 회포를 풀고 정을 나눈다.

또한 추석은 언 땅에 씨를 뿌리고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자식처럼 길러낸 그 노동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절기이다. 모든 결실은 흙과 노동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넘쳐나는 고향을 찾으면서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모아 어른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한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민족대이동에는 이런 수확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하고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올해는 그 고향이 대부분 수해를 입었다. 수해지역의 참상을 비추는 TV화면에는 시름없는 노인네들의 고통과 허탈만 맴돌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농어촌과 산간, 지방 소도시에는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나가고 없기 때문에 노인네들이 수마가 할퀴고 간 뒤끝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농토가 수해를 입어서 올 추석에는 거두어 드릴 수확도 예년과 같지 않다.

이번 추석에는 웬만하면 도시에나와 있는 자녀와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노부모들의 허탈감을 다독거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기를 불어넣어 줄 일이다. 수마의 악몽을 씻는 데는 가족의 정과 이웃의 보살핌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까.

경북대 교수·사회학과 노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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