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 보내기

입력 2002-09-18 14:18:00

대구시 북구 노원동에 사는 주부 이모씨는 최근까지만 해도 명절이나 제사때마다 3동서 중 맏동서 형님의 눈치보기가 겁이 났다. 직장생활로 항상 심적 부담에 기를 못펴고 있던 처지에 몇해 전 추석에는 "제사나 명절 때는 휴가내면 되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아랫동서와는 너무 다른 대접에 순간 화도 나고 울음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이씨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 형님도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이제는 '시댁험담'도 같이 나누는 동기간이 됐다고 한다. 아랫동서도 뜨개질한옷이나 장갑으로 성의를 표시하고 어느새 며느리 3명이 서로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햇곡식과 햇과일로 음식을 나누고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추석. 그러나 명절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주부들은 대부분 즐거워 하거나 행복해하는 이가 드물다.

차례상 음식마련이나 뒤치다꺼리보다 시댁에 대한 불만이나 남편과의 신경전, 또는 동서간의 불협화음이 주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들 둘을 둔 시어머니 서모(대구시 북구 칠성동)씨의 얘기는 며느리와는 또 다르다. "며느리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솔직히 시어머니인 나도 불편하고 눈치 보여요. 나중에 내아들 들볶을까봐 여간 신경쓰이지도 않고…".

고향이 시골인 40대 회사원 이모(대구시 북구 태전동)씨의 얘기도 의미심장하다. "남자라고 편한 것 없어요. 운전해서 오가는 것도 힘들지만 집사람 고생하는 거 눈으로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죠. 명절 후 시집에 대한 불만을 꺼내거나 몸아프단 소리를 하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주부나 가족들끼리 얽히고설킨 제각각의 하소연에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오빠를 두고 있는 신모(대구시 동구 신암동)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명절 당일 본가에 왔다가 그날 바로 서울로 돌아가기 바쁜 작은 오빠가 형수에게는 지극 정성이지요. 옆에서 봐도 닭살 돋을 정도예요. 큰 돈은 아니지만 상품권이다 선물이다 물품공세에 칭찬세례까지 퍼부어 주고 가지요. 새언니도 정이 흠뻑 들어 때로는 친정가는 것도 뒤로 미루곤 한답니다".

4남1녀중 셋째인 곽모(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씨 집의 경우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며느리가 4명이지만 모두가 부부자영업이나 맞벌이인 관계로 차례음식 장만은 명절 전날이나 되어야 간신히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장보기는 시어머니 몫인 데다 늘 일하는 며느리만 애를 쓰게 된다고. 대신 나머지 며느리들은 시간만 나면 시댁으로 달려가고 명절 하루만큼은 화장지나 간단한 상품을 걸고 걸쭉한 윷놀이 한판으로 서로간의 묵은 감정을 털어버린다.

남편이 외동인 이모(대구시 남구 대명동)씨의 경우는 시어머니가 집안의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송편 빚기,밤 까기를 시키고 며느리의 애로사항을 이해해주시는 것이 너무 고맙다"며 "가사분담까지는 아니지만 시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이 명절 스트레스를 일시에 날려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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