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태극기와 인공기

입력 2002-09-07 15:04:00

'깃발'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와 감동은 참 묘한 것이다. 깃발은 한 집단의 존립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뺏기면 망하고 뺏으면 흥하는 묘한 물건이다.

미국 애나폴리스의 해사(海士)박물관에 가면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때 미해군이 강화도에서 노획해간 대형조선군기(軍旗)가 전시돼 있다고 한다. 당시 미해군으로서는 전승 기념물이지만 이 깃발아래서 미군의 총부리를 몸으로 막았던 조선병사로선 치욕의 증거물인 셈이다.

▲평소엔 아무런 느낌없이 쳐다보던 우리의 깃발 태극기도 외국생활이나 국가간의 스포츠, 외교협상의 테이블에서 쳐다볼 땐불끈불끈 뜨거운 힘이 용솟음치게 한다.

아마도 태극기가 우리에게 준 감동의 극치는 태극기란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1919년의 3·1 독립만세운동때의 그 태극기와 1950년 9월28일 '서울 수복' 이틀전 박정모 해병소위와 최국방 이병이 돔 꼭대기에 올라가 꽂은 중앙청 태극기, 그리고 2002년 '대~한민국'과 함께 월드컵 축구장, 서울시청앞 광장, 대구 범어로터리를 뒤덮은 태극기의 물결이란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산 아시안게임에서의 북한 인공기(人共旗) 게양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우리 태극기의 의미는 더 깊고 커지고 있다. 기실 태극기는 김일성 주석이 공산당을 만들고 북한주민 앞에 첫 얼굴을 보였던 45년 10월 당시에도 사용됐다.

그러다 김일성 정권은 한국과의 차별화를 통해 정통성의 확보를 노렸고 그것은 3년뒤 48년 9월9일 북한 국가창건 선포때 인공기의 게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 자료에 따르면 인공기의 붉은 색과 푸른 색은 혁명과 자주를 뜻하고 흰 동그라미 안의 오각별은 북한 인민의 영웅성을 뜻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정통성을 부인하는 이 깃발이 부산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나부끼게 되고, 그 인공기가 대구시 북구 노원동의 휘장제작 업체인 협신특수나염에서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남북화해의 시대라 한들 쇼킹한 '사건'이다.

▲오늘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거기에는 태극기도 인공기도 없다. 북측이 제안한 국적없는 '한반도기'가 펄럭일 뿐이다.내년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도 주최국인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간 곳 없고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한다.

세계적인 대회를 주최하면서도 국가와 주권의 상징인 태극기의 입장을 포기한 데 대해 지금 재야(在野)단체들은 반대성명을 내고 통탄하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충격을 누르고 태극기를 양보한 DJ정권의 '속쓰리고 깊은 뜻'을 북측이 제대로 읽어주면 좋겠다.

스포츠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고 적십자회담·경협 및 군사회담 등에서 더 이상 앞뒤 맞지 않는 행동이 없었으면 좋겠다. 태극기와 인공기의 내력을 짚어본 이유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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