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후-(6)'맛과 멋' 세계화

입력 2002-07-08 14:26:00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했던 일제때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백자의 미(美)가 지상에서 허공으로 비상하는 선(線)에 있다고 했다. 백자에 담긴 선의 무상(無常)한 아름다움에서 한국인의 심성에 녹아있는 초탈과 체념의 미학을 읽었던 것이다.

붉은 악마의 고품격 거리응원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월드컵 기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멋과 맛은 어떤 것이었을까.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담긴 은근한 정서와 풍경들,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에 스민 정감과 옛집 추녀선에 깃든 곡선의 미, 판소리에 깃든 민중의 애환, 김치와 된장에 담긴 구수한 한국의 맛….

가만히 들여다보고 음미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하기 힘든 한국문화의 이같은 진면목을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월드컵의 질적인 성공이 우리 문화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도를 높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멋과 맛을 느껴보려는 외국인들의 발길도 그만큼 진중해졌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린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템플스테이였다. 예불.참선.발우공양.다도 등을 통해 우리 정신문화의 일단을 직접 체험한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다시 찾고 싶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캐나다의 한 청년은 "참선이 눈물날 정도로 좋다"며 템플스테이의 상설화를 주문했다. 직지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퀸테로(Quintero) 베네수엘라 대사는 다기와 연등에 스민 한국적 정취에 큰 관심을 나타내며 '아리랑' 노래를 애써 배워가기도 했다.

대구박물관의 전통복식전을 취재하러 온 로이터통신과 중국 상해 TV기자들은 치마 .저고리에 밴 단아한 한국적 정감에 찬사를 보냈다. 합기도 연수를 위해 지난달 말경 대구(정기관)를 방문한 마크 브래켓(35) 미국 UCLA대 교수는 해인사와 동화사를 다녀온 소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한국의 사찰은 정적이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들여다 볼수록 뭔가 깊은 맛이 우러난다". 일본과 동남아의 여러 불교국가도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선불교적 특성이 강한 한국의 고찰에서 한차원 더 높은 동양적 정신세계를 발견했다.

중국 난카이(南開)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어 강사로 대구에 온 우샤오팡(25)씨는 최근 안동의 하회마을을 다녀와서 "굽이도는 강물과 병풍같은 바위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한폭의 그림이었다"며, "작은 공간에 귀족의 위엄과 서민의 탈춤이 공존하는 문화가 독특하다"고 말했다.

월드컵 기간 가족과 함께 대구에 온 쉐리 그리던(40.여.미국 뉴햄프셔에서 레스토랑 경영)씨는 채식 위주의 건강식과 같은 그릇에 담아 함께 떠먹는 공유의 음식문화에 큰 호감을 나타냈다.

함께 온 토드 밀러(37)씨는 "발효식품으로 항암효과가 있는 김치와 된장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냄새가 싫지 않다"며 된장 끓이는 방법까지 익혀서 돌아갔다.

월드컵은 업그레이드된 한국의 이미지와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이목도 한단계 끌어 올렸다. 여기서 우리는 주보돈 경북대 박물관장의 얘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조차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의 멋과 맛에 대한 진정한 재음미가 바로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 첫걸음입니다. 그 다음이 세계인들에 왜곡 입력된 우리문화의 이미지 수정을 위한 다양하고 장기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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