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칼럼-근심은 먼저, 즐거움은 뒤에

입력 2002-07-08 00:00:00

임진왜란 때 경상도 영산의 유생으로 의병에 출전했다가 불행히도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던 이진영(李眞榮)은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농노(農奴)생활 등 갖은 고생을 하다가 어느 스님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 기슈(紀州, 지금의 와카야마)땅에서 학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뛰어난 학문과 인품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지방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소문을 들은 기슈의 성주 도꾸가와 요리노부(德川賴宣)는 어느날 와카야마성으로 그를 불렀다. 성주는 이진영이 그의 신하가 되어 출사(出仕)할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이진영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이유로 끝내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객례(客禮)로서 성주의 시강(侍講)이 되어 그에게 글을 가르치게 되었다.

성주는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또 어떻게 하면 선정(善政)을 베풀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말하자면 제왕학(帝王學)의 가르침을 청했던 것이다.

이진영은 성주에게 여러가지를 제시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것은 민본정치(民本政治)였다. 즉 백성은 나라의 근본으로서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근심은 백성들보다 먼저 근심을 하고 백성들이 즐거워할 일은 백성들보다 뒤에 하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고 했다.

◈서해교전과 금강산관광

이진영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성주는 탄성을 지르며 "내가 진작 선생을 만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우며 지금 만난 것은 한나라 유방(劉邦)이 장량(張良)을 만난 듯, 촉나라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만난 듯하다"며 기뻐하였다. 그 후 성주는 이진영의 가르침을 철저히 이행하여 선정을 베풀어 명군(名君)이 되었다.

선우후락(先憂後樂)으로 약칭되는 이 말은 중국 북송(北宋)의 범중엄(范仲淹,989~1042)의 '악량루기(岳陽樓記)'에 실려있는 글이다. 1045년 악주(岳州, 지금의 호남성 악양)의 자사(刺史) 등자경(藤子京)이 악양성의 성문의 누각을 수리하고 범중엄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범중엄은 누각 위에서 바라본 경관의 모습을 서술한 뒤, 이것은 보는 사람의 경우에 따라 근심스러움과 즐거움이 달리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나라의 지도자는 개인적인 사정을 떠나 항상 나라와 백성들의 근심과 즐거움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선우후락'의 진리 잊어서야…

그 후 이 말은 위정자의 마음가짐의 명구(名句)로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지난 7월 1일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4명의 영결식에 대통령.국무총리.국방부장관.합참의장 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해군장이기 때문에 의전상의 관례에 따라 불참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목숨을 바친 꽃다운 젊은이들의 고혼(孤魂)들은 누구의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인가.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잃은 유가족은 누구와 더불어 슬픔을 나누어야 할 것인가. 위정자는 백성들의 근심을 백성보다 먼저 하라고 했거늘 어찌 백성들의 그 슬픔의 장소에 자리를 같이 하지 못했을까?

천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성군(聖君)과 국가 지도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머리 속에 새겨왔던 '선우후락'이라는 그 민본정치의 철리(哲理)가 한낱 내부에서 만들어졌다는 관례보다 아래에 있었던 하찮은 희언(戱言)에 불과했단 말인가.

지도자의 즐김은 백성보다 뒤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즐겁고 자랑스러운 일은 어찌 그리 먼저 챙겨서 앞서 즐기려고 할까? 한쪽에선 순국장병유족들의 오열하는 소리가 너무도 처절하게 들려오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금강산을 향하는 유람선의 음악소리를 그렇게도 빨리 흘러나오게 해야 했을까?

'선우후락'의 철리를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어떤 다른 이유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데에 국민은 더욱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같이 슬퍼해주면서 그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 그리고 백성들이 즐거워하면 그것이 자기의 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앞세워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그러한 지도자를 따르고 존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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