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2-05-13 14:06:00

일찍이 부모님 두 분 다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우리 반 이경혜

저만큼 밝고 착하게 키우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꼬부라진 허리 몇번이나 곧추 펴시며

스승의 날, 학교에 찾아오신

일흔 살의 호호백발 할머니

"철모르는 어린 것들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힘들 것이요, 선상님"

가실 때 허리춤에서 건네주신

꼬깃꼬깃 접혀진

할머니 체온 따뜻했던 천 원짜리 한 장

안 받겠다고 몇번 사양했다가

되레 흠씬 야단 맞고 도로 받은 자장면 값

꼭꼭 간직했다가 할머니 말씀대로

경혜랑 맛난 자장면 사 먹었네

내가 받은 가장 작은 촌지

그러나 가장 잊을 수 없는 큰 촌지

-양정자 '잊을 수 없는 촌지'

현직교사 시인이 쓴 시이다. 내용이 쉽고, 약간의 애교마저 느껴지는 시이다. 학교현장에서 촌지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빚고 있지만 촌지도 이 정도라면 따뜻한 정이 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이기심이 예의와 탐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곧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깨우치기 위한 날이 되레 선생님을 욕보이는 날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그런 점에서 이 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해준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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