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잘난사람, 보통사람

입력 2002-05-09 00:00:00

우리는 참으로 형편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눈만 뜨면 또 '그 잘난 사람'이 부정한 돈을 챙겼고, 이를 주선했다느니 하는 소식에 참담하다. 어쩌다가 나라꼴이 이 지경에 빠졌는지 어이가 없고, 권력층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은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리의혹 등으로 영일(寧日)이 없었는가보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때는 양자(養子)가 권총으로 자살한 아픈 기억도 있고, 전두환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동생이 구속된 일도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도 친인척 관리측면을 놓고 보면 자유스럽지 못하다.

소위 '황태자'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구속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유아 어쨌든 두 전직 대통령도 구속당한 불행한 나라다.

지금은 어떤가. 대통령의 세 아들, '홍(弘)3'이 신문의 제목이나 TV의 자막을 뒤덮고 있다. 어느 정권때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비리연루의혹으로 야당은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할 정도다. 12시간도 채 안돼 말을 바꾸었지만 대통령 부인까지 홍걸(弘傑)씨와 누구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대통령이 아들 때문에 간접이건 직접이건 거듭 사과하고 영부인의 '역할'까지도 입방아에 오르고 의심받는 이런 나라가 세계에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최근 저희 자식들과 몇몇 주변 인사들로 인해서 일어난 사회적 물의와 국민 여러분의 질책에 대해 무어라 사과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대국민(對國民) 사과도 설득력(說得力) 부족은 물론 미흡하다는 지적은 숙지지 않는 국민들의 분노한 목소리다.

DJ정권의 권력층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가 않다. 건국이후 역대정권과 비교하면 어떨지, 민초(民草)들이 짐작하고 있다.

날만 새고 나면 또 다른 게이트가 튀어나오고 수서(水西)사건을 연상케하는 서울 성남시 분당지역 파크뷰 아파트 특혜분양설은 서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실세라는 여당 국회의원이 한채다, 두채다, 세채다 등으로 말바꾸기를 해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

집권층의 실세(實勢) 중의 실세가 수뢰혐의로 기소(起訴)가 예정돼 있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국립대 총장이 도덕성을 의심받아 자진사퇴하는 일련의 사태에도 할 말을 잃는다.

힘만 조금이라도 쥐면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고 남에게는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적 지도자'다. 속으로 온갖 못된 행위를 자행하고도 법을 지켰다는 듯 표정을 관리하면서 탈없이 지내는 '한국적 지도자'를 우리가 뽑았다니 기가 막힌다.

올해 지방선거, 대선(大選) 등 양대선거가 치러진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선거다. 지금까지 가당치도 않은 입후보자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얼마나 현혹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구관(舊官)이 명관'이란 자유당의 구호에 설마했었고, '민족중흥'에 유신독재도 감수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 총칼 들고 악악댄 '정의사회구현'에 정신이 흐려졌고 '보통사람'에 상대적으로 '잘난 사람'으로 착각했었다. '문민정부'의 IMF환란(換亂)에 얼마나 땅을 쳤던가.

준비했다는 '국민의 정부'는 또 어떤가. 지금 경선을 마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의 자질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철저한 검증은 우리의 몫이다. 친인척 관리를 잘 할 사람, 말바꾸기를 안하는 사람, 오만과 독선이 없는 사람, 시시콜콜 간섭 않고 얽어매지도 않는 그런대로 '무위(無爲)'적인 사람을 고르면 어떨까.

물론 지혜(智)로움이 으뜸의 덕목이다. 믿음이 가야 하고 상대방을 늘 배려하는 인(仁)이 있다면 갖출 것은 갖춘 지도자다.

한국적인 풍토에서는 무엇보다 엄격(嚴格)이 필요하다. 잘난 사람도 원칙의 준수다. 제갈량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엄격한 군율의 집행이다. 대통령아들의 비리의혹, 3게이트 등 국정문란 상황은 김대중 대통령의 온정주의에도 있다고 한다.

결국 '고생을 같이 했던 사람', '그럴 리가 없는 사람', '내가 아끼는 사람', '봐주어야 하는 사람' 등이 도처에 깔렸다는 얘기가 아닌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은 특히 엄격한 시스템 운용이라야 조직이 제대로 움직일 것이다.

룰이 왔다 갔다 하면 어느 국민이 수긍할 것인가. 지도자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라도 국가를 위해서라면 죄를 물어야 하고 목(職責)을 베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그렇다하면 지도자의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우린 지금껏 너무 자의적인 세상을 살아왔다.

-최종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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