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금강산 이산상봉-꼭잡은 두손…50년전 신혼 회상

입력 2002-04-29 14:42:00

◈적십자사 '경비 부담" 설득

○…경북 구미에 살고 있는 임경수(86) 할아버지는 금강산에서 제수와 조카를 만난 지난 27일 오후 늦게까지 "돈도 없고 몸도 불편하다"며 속초에 가지 않은 채 방북 기회를 포기할 뜻을 밝혀 한적을 긴장케 하기도 했다.

임씨가 지난 27일 오후 3시까지 속초에 가지 않아 한적이 뒤늦게 연락, 임씨를 속초로 실어나른 것.

임씨 조카는 애초 "요즘이 농번기여서 삼촌을 모시고 금강산에 갈 사람도 없고 삼촌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등 몸도 불편하고 경비 10만원도 입금하지 못했다"며 임씨가 가기 어렵다는 뜻을 전했지만 한적 관계자가 "가실 의사만 있다면 비용은 걱정 말라"고 설득하자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께 택시비 25만을 들여 구미를 출발, 오후 11시30분께 속초에 도착한 뒤 이발을 하는 한편, 양복을 사입고 28일 오전 1시30분께에야 숙소인 한화리조트에 도착했다.

◈재혼한 당신 아내 선물

○…"아버지는 돌아가셨나?"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럼 어머니도 돌아가셨나?" "한 6년 됐어요" "가만보자, 그럼 96살까지 사셨으니 오래 사셨네".

52년만에 남편을 만났던 정귀업(75) 할머니. 할머니는 남편 임한언(74) 할아버지를 29일 오전 개별상봉시간에 금강산여관 9층 16호 방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은 어젯밤 전체상봉 자리에서 두 시간 내내 꼭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을 정도로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헤어질 당시의 풋풋한 20대 부부로 되돌아갔다.

두 사람은 이날 가족 안부와 서로 남쪽과 북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었다.쏜살같이 시간이 흘러 개별상봉이 끝날 무렵 정 할머니는 남편에게줄 선물 치고는 꽤 큰 선물꾸러미를 풀어 주섬주섬 선물을 꺼냈다.

"이 한복하고 금목걸이, 반지는 당신 것이고 북에서 재혼한 아내 몫으로 한복도 한벌 준비했어요. 당신이 북에서 낳은 자녀 5명에게는 시계를 주세요"

남북 분단의 틈바구니에서 애꿎게 짓밟혀 닫혔던 정귀업 할머니의 마음은 이번 상봉으로 열려 북쪽 남편의 새 가족까지 품안에 껴안았다.

◈어머니 영정 안고 자매 오열

○…"영정이지만 어머님께 인사드려".

지난 26일 돌아가신 어머니 어병순(93)씨 대신 상봉길에 나선 이부자(62)씨는 29일 오전 개별상봉 때 언니 이신호(66)씨와 다시 만나 어머니의 영정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신호씨는 어머니 영정에 50년만에 큰 절을 올리며 반세기의 회한이 담긴 눈물을 흘렸다. 부자씨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언니의 손을 잡은채 통곡했다.

어씨의 영정은 상봉단에 포함됐던 어 할머니가 사망하자 대한적십자사측에서 이들 딸 자매를 위해 별도로 마련해 준 것.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신데 대한 격한 감정이 가라앉자 두 자매는 어린시절 추억과 살아온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냐" "사는 곳은 어디냐"는 등 언니 신호씨의 질문은 끝날줄을 몰랐고 부자씨는 "어머니는 항상 언니를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다"며 25년간 곁에서 모신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언니에게 들려줬다.

◈강일창 옹 세동생 만나

○…"형님, 조카애들은 많이 자랐겠지요?" "시집장가가 다 잘 살고 있지".

29일 오전 금강산여관 3층 3호에서 은창, 옥분, 금숙씨 등 세 동생을 만난 강일창(77) 할아버지는 상봉 첫날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서로 볼수 없는 가족, 친척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황해도 연백군 2남6녀 대가족의 맏이었던 강씨 할아버지가 동생들과 헤어진 것은 6·25전쟁 당시 의용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예성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화도 교동으로 피신하면서부터다.

"예성강 나루터는 옛날 그대로 있나? 동란때 어머니가 한밤중에 30리나 떨어진 나루터까지 따라나와 눈물 흘리면서 날 바래주셨지. 지금도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던 둘째 덕창(71)씨와 함께 이남으로 피난갈때 어머니가 바래주시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동생들도 "어머니는 행복하게 사셨어요"라고 대답했다.

강씨 할아버지는 이말 한마디에 안도감을 느꼈는지 "그래, 그래, 그러셨을거야"라며 동생들의 주름진 손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동생들이 "양자로 갔던 덕창 형님은 지금 뭐하세요?"라고 묻자 강씨 할아버지는"지금 나이 먹어 손자들 재롱 보면서 지내지. 너 여섯살때 보고 처음 봤는데 정말 그때 모습 그대로구나"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말에 은창씨는 반세기 넘도록 자신의 옛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며 형님인 강씨 할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았다.

◈첫날 상봉 예정보다 지연

○…28일 이뤄진 4차 이산가족 상봉은 입국수속 과정이 늦어지고 당초 계획과 달리 상봉에 앞서 해금강호텔에 여장을 푸는 바람에 예정보다 다소 늦게 시작됐다.남측 방문단은 오후 5시25분께 상봉장소인 금강산여관에 도착, 북측 관계자들과 안내원들의 환대를 받았다.

이산가족들은 2시간여만인 오후 7시20분께 단체상봉을 마치고 오후 9시에 열릴 만찬 상봉에 앞서 잠시 숙소인 해금강호텔로 돌아갔다.

◈북측 여동생 두명만 만나

○…피랍 남편과 상봉하지 못한 김애란 할머니는 덕실, 순실씨 등 여동생 2명에게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듯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김씨는 "두분의 말을 들으니 동생이 틀림없는 것 같다"면서도 "왜 자꾸 조작된 말을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북쪽 두 동생은 "통일은 하느님에 달렸다"는 김씨의 말에 당황해했으며 북측 관계자들도 김씨 가족의 상봉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수에 시어머니 비녀 전달

○…"대를 잇겠다며 혼자 피난길을 떠난 형님이 돌아가시다니…".

형수 김문룡(66)씨와 조카들을 만난 변정의(61)씨는 이날 한국전쟁 당시 대를 잇기 위해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북한으로 피난간 형님 대신 형수에게 비녀를 전달, 주위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전달된 비녀는 남쪽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만나면 전달하려고 고이고이 간직해온 것. 김씨는 시어머니의 비녀를 전달받고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변씨는 또 광일씨 등 조카들에게 열쇠고리를 전달하며 희망을 갖고 살자고 다짐했고 50여년간 소중히 간직해온 형님의 헤어질 당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후 5시25분께부터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단체상봉은 아쉬움과 한탄 속에 '눈물 바다'를 이뤘다.

테이블마다 따로따로 앉아 상봉 시간을 기다리던 북측 가족들은 남측 가족들이 보이기 전부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울음을 애써 참고 있던 이들도 남측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자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기도 했다.

○…이날 단체상봉장으로는 금강산여관 2층이 주로 이용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여관 2층 로비와 식당에서 만나 서로를 부여잡았다.

이산가족들이 앉는 테이블에는 미리 음식이 놓여있던 1-3차 상봉 때와는 달리 '룡성 사이다'와 '룡성 오미자 단물' 등 음료수만 놓여 있었다.

◈의료진 새벽까지 각방 회진

○…단체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과 북측 가족·친척은 28일 오후 9시 25분께부터 두시간 가량 북측 단장인 최창식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이 금강산여관에서 마련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첫날 고령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건강을 돌보느라 바쁘게 움직였던 남측 적십자 의료진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의료진은 이날 만찬이 끝난 후 해금강호텔의 각 방을 찾아 새벽까지 회진에 나서는 등 고령 이산가족들의 건강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만찬장 통일노래 등 합창

○…북한 노래 '휘파람' '통일무지개' 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단체상봉 때와 달리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 단란한 모습을 연출했다.

북측의 한 가족은 "언제나 오려나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소절이 들어있는 '통일아, 통일아'를 부르며 분단의 한을 달래기도.

일부 북측 가족들은 '반갑습니다' '휘파람' '내나라 제일로 좋아' '군민일치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을 부르며 흥을 돋웠다.

◈정인용옹 포기 99명 출발

○…남측 방문단은 폐암 말기인 정인용(85)씨가 방북을 포기함에 따라 100명을 채우지못한 채 99명이 출발했다.

한적은 지난 27일 오전 정씨 가족이 도저히 방북할 수 없다고 알려오자 비어있는 한자리를 메우려고 대책 마련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적은 예비후보 1순위인 김모씨에게 연락, "상봉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알린 뒤 북측과 연락관 접촉을 통해 협상에 나섰지만 북측은 이날 오후 "상봉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공식 통보해왔다.김씨는 출항 준비를 끝내고 속초까지 달려와 상봉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는 후문.

◈60대 딸에게 결혼선물

○…"자 이것 받아라". "다 지나서 무슨 반지예요".상봉 둘째날 금강산여관 11층 11호에서 큰딸 김순실(63)씨를 다시 만난 황선옥(79) 할머니는 딸에게 결혼반지와 목걸이를 건넸다.

큰 딸을 북에 남겨두고 반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황 할머니가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딸에게 결혼선물을 마련해주는 일. 전쟁전 남쪽으로 내려올 당시 잠시 외가에 맡겨둔 뒤 5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큰 딸이 '결혼이나 했는지' 늘 궁금해 하던 황 할머니였다.

반지를 받은 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2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모습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위를 위해 곱게 지은 한복까지 준비했다가 소식을 듣고 낙망하는 어머니 모습도 떠올랐다.

어머니도 딸쪽으로 몸을 수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건만 또다시 미안하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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