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 대물림 고통 극심

입력 2002-04-27 14:26:00

부산시 수정동 산복도로의 오르막길을 30대 초반의 한 남자가 힘겹게 걷고 있다.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손쉽게 걷는 길.

평지에 다다르자 풀썩 주저 앉은채 이마에 땀을 주루룩 흘리며 긴 숨을 몰아쉰다.이제 집까지는 20개의 계단만 오르면 된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한칸 한칸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역시 숨이 차오른다.

매일 이처럼 고된 나들이를 되풀이하는 이는 원폭 피해 2세인 김형율(33)씨.어머니 이씨는 일본 히로시마현 가가구치에서 태어나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피해를 입은 원폭 1세대다. 당시 이씨의 언니는 그 자리서 목숨을 잃었고 이씨는 후유증으로 피부병을 평생 안고 살아왔다.

김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은 생후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고 김씨도 태어나면서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아 병치레를 거듭했다.그리고 지난 95년에는 '면역글로블린M의 증가가 동반된 면역글로블린결핍증'이라는 희귀한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방사능 피폭에 의한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김씨는 30대로 믿기지 않을 만큼 왜소하다. 160cm를 겨우 넘는 키에 몸무게는 초등학생 수준인 37kg.

김씨의 삶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남들이 흔하게 겪는 감기라도 그는 한번 걸리면 보름정도 누워있어야 해 가장 두려워 한다.

"감기 때문에 보름씩 누워 있다면 남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기침이 시작되면 극심한 호흡곤란때문에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으로 방안을 뒹굽니다".김씨는 현재 폐기능이 40% 정도 정지된 상태다. 갈수록 몸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김씨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번 입원시 수백만원이 드는 병원비는 김씨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다. 병원비를 대느라 집을 팔고 시장 노점을 하는 어머니와 출가한 형제들의 도움도 받았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치료에 가족들은 허탈할 뿐이다.

"평생 병치레로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살고 있습니다. 30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살아갈 힘도 없고, 부모님도 연로하시고...".김씨는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취직도 해봤지만 한번 아플때마다 며칠씩 결근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계속 근무하기란 불가능 했다.

지금 김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을 수많은 원폭 2세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 자신의 처지를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원폭 2세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작년 10월에는 4박5일 일정으로 직접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큰 성과는 없었지만 일본의 원폭 2세들과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일본쪽의 자료를 많이 구할 수 있었다"며 "올해 또 방문해 한걸음 더 나아간 성과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원폭 2세들은 사회적 불이익을 당할까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국내에 약 4천~5천여명의 원폭 2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그러나 원폭 1세대가 어느 정도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데 반해 원폭 2세대들은 한국과 일본 어느쪽으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폭 2세의 존재 자체를 인정치 않는다. 원폭피해와 유전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그나마 다행인것은 작년 5월부터 일본내에서 '히로시마 방사선 영향 연구소'가 주축이 돼 원폭 2세대들에 대한 광범위한 역학 조사가 이뤄지고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원폭 1세대로 그동안 쉬쉬하고 살아온 어머니의 고통스러웠을 삶이 저로 인해 되살아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살아 생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또 우리사회에서 원폭 2세에 대한 관심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원폭 2세라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칠지 모르는 사회적 불이익과 편견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나선 김형율씨의 말끝에 희망이 묻어 있었다.

부산·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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